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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Oct 15. 2022

14. 위문편지

새벽부터 김밥을 쌌을 엄마의 도시락 밑에는 엄마가 직접 쓴 편지가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을 때가 있는데 어린아이가 어찌 이리도 

이쁜 생각을 했을지 기특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매일 자라는데 나는  성장을 보면서도 

자각을 하지 못하고  어리다고만 생각하는 

좁은 시각 탓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 전에도 아들이 학교에서 써왔다며 

몸을 배배 꼬면서  내미는 편지를 읽고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난다.


다른 집들도 그랬겠지만 

엄마는 내가 소풍 가는 날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김밥을  싸주셨는데 

나는 어릴 적 그게 정말 좋았다.


엄마가 따뜻한 김밥을 말아서 

즉석에서 칼로 슥슥 썰어주시면,

나는 아기 새가 모이 받아먹듯 

 자리에 앉아서  줄이든  줄이든 

배가 부르도록 먹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그리고 목이 메인다며 라면스프에 계란을 풀어 

국물을 내어주셨는데 

원체 라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김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집을 나서면 

어쩐지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일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이  기다려졌고,

소풍 가는 날 아침 엄마가 하는 모든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쫑알쫑알 나누는 

 시간이  행복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기억에 소풍은  신나 있었다.


그랬다.

나는 참 행복하게 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그곳!

스무 살의 나는 군대를 가야 한다면 제대로 다녀와야

하고, 군대를 간다면  멀리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자대 배치를 받아서 갔던 곳은 

강원도 화천의 최전방 부대...

그곳은 정말 추웠고, 집에서는 정말 멀었다.


5 6 휴가를 한번 나오면 편도 9시간을 이동해야 

했으니... 새벽에  비비면 나오면 저녁이 되어야 

집에 도착을   있었다.


그리고 정말 바라던 대로 소위 힘든 부대에서 

나는 제대로 훈련을 받았다.


 당시 소원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게 젊은 청춘에 대한 예의 아니겠어?

라는 생각을 했던 지난날 스무 살의 나에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당장 달려가 

지금의 내가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아마욕을 하며,

"지금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야~!!"라고...

외쳤을지 모르겠다.


군대를 가기 전이었으니 어떤 면에선 

방위로 빠지거나 면제를 받는 등의 불의를 보면 

스스로 참지 못했던 정의의 사도로 착각했었으니...

지금은 너무 비겁해졌고, 그땐 그렇게 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2년 2개월을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원체 집에서 멀었던 군부대였기에 휴가를 가지 

않는 이상 부모님 얼굴을 보기는 어렵다 생각했고,

나를 보러 부모님이 이 먼 곳까지 찾아오실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외출을 쓰고,

부모님이 주말을 끼고 오시더라도

만날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되니까 사실 얼굴 잠시 

보러  먼길을 오시는 것은 

절대 상상도   없는 일이었다.


사실 군대에 있을  

누군가 가족이나 애인이 찾아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군대에서 주는 음식도 먹을 만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회에서  먹던 습관이 있으니 

당연히 먹는 것도 부실했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가끔 가족이나 애인이 

찾아오면 평소 먹고 싶어 하던 것들도 싸들고 오고,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래서 다들 누군가 찾아오면,

주변에서 전투화도 새것처럼 닦아주고,

외출이나 외박 나갈 옷도 일주일 전부터  다려놓고 

부대 밖을 나갈 날만을 기다렸다.


나도 그런 부대원이 있을 때마다 부러워하며,

마치 내가 나가는 마냥 그들의 옷과 신발을 

정성스레 준비해주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할아버지께서는 

위암 선고를 받으시고,

생애 마지막 해를 보내고 계셨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은  할아버지 병간호로 

병원에 매여 계셨고, 삶은 피곤하고 돈은 쪼들리는 

한마디로 피폐한 상태로 하루하루 버티고 계셨다.


그런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무거운 일인지 

겪어본 사람들은  것이다.


병원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사실 환자보다 간병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금도 간병인을 쓰려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당연히 그런 돈은 없었으니 우리 집은 돈이 아닌 

몸으로 때웠다.


사는 게 힘들고 지쳐서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겠냐만, 먹여 살릴 가족이 있고,

병원에 누워있는 가족이 있으니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도 

 성공인 나날이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고서 내가 군대에 있으니 

 보러 와주시라는 말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런 기대는 아예 포기하고 

지냈었던  같다.


그런데 엄마가 부대로 전화를 하셔서 

 먼길을 오겠다고 전하셨다.


나는 괜찮다며, 부대가 바쁘다고 

안 오셔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극구 "내가  번은 가서 

 눈으로 직접 봐야 마음이 편하겠다."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소리 없이 한참을 눈물을 쏟아냈었다.


나도 가족이 면회를 온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고, 그냥  마음속 어딘가에 

속상하고, 외로웠던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  같.




약속한 그날, 엄마는 그 먼 길을 홀로 찾아오셨다.


엄마는 내게 자신이 하신 말은 

 약속을 지킨 분이었다.


엄마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외출을 위해 

엄마는  그랬듯 새벽부터 김밥을 말아서 싸오셨다.


혹여 김밥이 쉴까 오는 내내 걱정을 했다는 

엄마는 어서 먹으라며 도시락부터 꺼내셨는데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없었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보온병에는 

계란을 풀어 넣은 라면 국물을 담아오셨고,

 국물은  뜨거웠다.


벽부터 김밥을 쌌을 엄마의 도시락 밑에는 

엄마가 직접  편지가 있었다.


 나는 글씨를 못써서 부끄럽다며,

학교 숙제에 사인하는 것도 싫어하시던 양반이 

자식이 군대에 가있다고 편지까지 쓰다니 

나는  편지를 읽지 않아도 

이미 어떤 말이 쓰여 있을지 짐작이 되었다.






"엄마! 편지도 썼어?"


"혹시나 부대에 일이 있으면 못 만날까 봐 

썼는데 엄마 부끄러우니까 나중에 읽어!"


"알았어요. 엄마!"


그렇게 엄마가 정성스레  편지는 

힘든 훈련이 있을 때마다 감춰두고 읽을  있게 

가슴에 품고 다녔다.


훈련으로 땀에 젖어 볼펜 글씨가  번져서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읽었다.


그렇게 나는 군대에서 기나긴 2 2개월을 

아무 탈없이 보내고 제대를 했다.


엄마의 사랑과 관심으로 

나는 그렇게 ,  고비를  넘겼다.




To. 엄마


나도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엄마에게 편지를 써봅니다.


받는 사람 : 엄마

마음을 표현하는 말 : 사랑해


엄마가 늘 사랑해줘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어요.

아직까지 엄마가 싸준 김밥보다 맛있는 건 없었어요.

날이 좋은 날에 내가 맛있게 김밥을 쌀 테니 

우리 같이 소풍 가요.


보내는 사람 : 아들 올림


         From.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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