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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Oct 18. 2022

15.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엄마는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품 안에서 그렇게 울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삶을 사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

보통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며 마음을 푼다.


속상한 일이 있는데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울 땐, 가족의 품 안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고 느껴질 때에는

혼자서 처절하게 그 아픔을 온전히 견디고

간신히 버텨낼 수밖에 없다.


만약 엄마가 없다면.... 말이다.




나는 스무 살이 되면서 친구의 권유로

매주 일요일이 되면 절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교활동을 했다.


부처님 오신 날에만 하루 일시적으로

나일론 신도였던 삶을 살다가

스무 살이 되면서 정식으로 종교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사실상 봉사활동이었기에

당시 나는 크게 종교에 대한 어떤 철학이나

신념 같은 생각이 없었다.


그저 매주 일요일이 되면,

늘 하던 루틴처럼 지하철을 타고 절에 가서

절에 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며 놀아주고

간식도 먹고 가르쳐줄 건 또 가르쳐주는

그냥 스무 살 대학생 형이었고, 오빠였다.


절에서 아이들을 대해야 하다 보니

노래도 부르고 교리도 알아야 궁금한 것도

알려줄 수 있으니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집에 와서 자연스레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절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는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어느 날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에 집중을 했다.




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따금 소소한 일들을 돕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절에서 일하는 분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절에 오는 노보살님은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잘못을 참회하거나 살아오면서 쌓인 회한이

다 부질없음을 잘 알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오시거나

자식이나 손자들이 그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신다고 했다.


어렸지만, 왠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고,

절에서 보았던 편안한 얼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부처님 앞에 드러내 놓고 마음을 위로받는다.


굳이 종교가 불교가 아니더라도

다른 종교들 역시 결국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있으면,

꽤나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과외도 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좀 벌었는데

엄마에게 첫 선물로 고급 란제리 속옷을 해드렸다.


늘 오래된 속옷에 제대로 된 속옷이 없었기에

빨래를 개키면서 나중에 좋은 속옷 하나

사드려야지 했는데 그렇게 사회에서 벌었던

첫 월급 60만 원 중에 10만 원짜리

속옷을 사드렸던 게 기억이 난다.


그날 엄마는 그 속옷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어루만지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물론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장롱에 처박혀 있는 것은

엄마와 나만의 비밀이다.


엄마는 늘 옷 선물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좋아하셨다.


그래서 나는 절에 다니면서

엄마에게 절복 바지를 하나 사드렸는데


엄마는 그 바지를 입고서

"이제 절에 자주 가야겠네!"

라고 좋아하셨다.




"엄마도 절에 한 번 다녀봐!

  절에 가면 되게 마음이 편안해져요!"

  꼭 여기 절이 아니어도 되니까! 응? 알았지?"


   "응, 알았어. 한번 생각해볼게~!!"


"약속이다! 이제 절 바지 입고 절에 다니시면 되겠네."


   "그래 까짓 거 한번 다녀보자!"


그 이후 엄마는 매월 초파일이 되면,

새벽에 대절버스를 타고 팔공산 갓바위를 다녀오셨다.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 언니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녀오시면,

아침도 거르고 곧바로 출근을 하셨는데

팔공산에 부처님을 뵙고 오면

몸이 하나도 피곤하지도 않다고 하셨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라고도 했지만,

엄마의 얼굴은 어느새 편안한 얼굴로

"나는 나중에 기운이 남아 있으면

  절에 가서 봉사하면서 살란다."라고

종종 말씀하셨기에…


나는 정말 엄마가 불교에 귀의해서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거나

그저 자식들 편안하라고 기도하려고

매달 부지런히 새벽기도를 다니시는 줄로만 알았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하던 중에

엄마의 안부를 묻던 중에 일이다.


무릎이 좋지 않아 오래 걷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시기에 나는 우스갯소리로

“아니 팔공산도 매달 가던 사람이 무슨 앓는 소리를

하시냐!”라고 장난 어린 핀잔을 주었는데..


엄마는 그때의 일이 생각났는지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실 그때 내가 너무 마음이 힘들고 지쳤는데 말이야.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때였거든..."


     "응...."


"네 할아버지 병간호도 해야지 니들 공부도 시켜야지

 돈이 필요하니 돈은 벌어야 하니까 죽도록 일만

 하는데도 한 달 죽자고 벌어봤자…

 수중에 남는 건 하나도 없지..."


      "음...."


"정말 허탈하고, 내가 왜 사는가 싶기도 하고,

 돌아가신 우리 엄마도 너무 보고 싶고..."


      (침묵....)


"내가 너무 힘이 들어서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할 친구도 가족도 없어서

 맨날 화장실에서 혼자서 몰래 울었는데.."


      "아... 진짜?"


"네가 절에 한 번 가보라 해서 그때 우연히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뵈러 새벽기도를 한번 갔는데

  진짜 부처님 앞에서 막 따졌잖아!!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복이 없이 태어나서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냐고... ‘

  그렇게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한참을 울었더니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 뵈러

  매달 초파일만 되면 힘든 줄도 모르고 올라갔지..."

"돌아가신 우리 엄마 보러 간다 생각하고..."


      "응... 잘했네... 잘하셨어....."


나는 전화를 하는 내내 추임새 같은 말 빼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한 맺힌 목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내가 외면했을 엄마의 외로운 시간을 다시 천천히 돌이켜 보았고, 말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쳐야 했다.


미안했다... 엄마에게...

그리 힘든데 그것도 모르고 외롭게 혼자 두어서...



  

나는 세상 엄마들이 절에 기도하러 간다고 하면,

모두들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만 하는 줄만 알았다.


그건 내 완전한 착각이었고,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명체일 뿐이었다.


엄마도 한 가정의 어여쁜 사랑을 받는 막내딸이었고,

구김 없이 순진하게 살아온 처녀였을 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나는

어느새 엄마에게 희생을 강요해온

나쁜 뻐꾸기 새가 되어버린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그날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고,

걱정하는 아내에게 나는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는 함께 눈물을 지었다.




To. 엄마


이쁜 우리 엄마!

어리석은 아들은 그저 우리 엄마가 늘 강하고 억척스럽게만 살아왔다 생각하고 엄마의 이쁜 마음과 천사 같은 행동들을 그냥 당연하게만 여기고 살아왔네요.


엄마도 하고 싶은 것, 이루어 내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 청춘이었을 텐데 엄마는 정작 나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요!


언젠가는... 진짜 내가 이 은혜 다 갚아드릴게요!

엄마! 고맙고, 미안해요.


우리 나중에 팔공산 갓바위도 같이 가요.

무릎이 아파서 못 가면 제가 업고 올라갈게요.

엄마! 우리 팔공산에 엄마 보러 가야지? 알았죠?


     From.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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