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가슴에 대못 박은 날

우리는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사랑'으로 어렵게 만났다.

by Hyean de TJ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후회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순간은 어쩌다 갑자기 문득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처럼 방심하고 있던 찰나

정말 '1'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튀어나오고

입 밖으로 나온 그 몇 마디는 상대의 가슴에 날카롭게

파고들어 평생을 빼낼 수 없는 가시처럼 박혀서

기억에서 잊힐 즈음 다시 또 아픈 고통을 준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더라도

사랑을 주고받으며, 그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

서로를 감싸 안아야 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사랑'으로 어렵게 만났다.




요즘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

인생은 회전목마라는 노래인데

그 가사를 보고 있자면,

괜스레 마음이 저려온다.


" 빙빙 돌고도는 회전목마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빙빙 돌아올 우리의 시간처럼

인생은 회전목마 "


매일 아침 일어나 돈을 벌러 일터에 나가고

정신없이 달려온 인생은 그저 허무하게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을 뿐이다.


나는 중년이 되는 나이가 되었고,

엄마는 이제 손주를 둘이나 둔 할머니가 되었다.




젊은 날의 나는 여느 집 아들들처럼

게으른 아침을 맞이했고, 해가 밝아지기 전에

엄마가 부지런히 차려놓은 밥상을 마주하며

식어버린 음식을 먹으며 투정을 하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니 참으로 못난 자식이었고,

쭉 쩡이처럼 속을 채우지 못하고,

젊은 시간을 참으로 아깝게 흘려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가르침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서부터는

생각을 고쳐먹고 나름대로 아등바등 살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다.


가진 것 없는 집에서 태어나 머리라도 좋았더라면,

혼자서라도 독학으로 준비해서 고시라도 붙었을 텐데

타고난 머리는 애당초 없었고, 이것 저것 호기심은

많아서 오래도록 집중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늘 나를 '팔방미인'이라고 재주가 많아서

무엇이든 잘한다고 칭찬을 했지만,

정작 '팔방미인'은 진득하게 뭐 하나 제대로

못해낸다는 뜻과 같다.




성공은 셀프라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동의하는 말이다.


나는 내 실력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저 멀리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학원을 다녀야 성공을

한다거나 남들이 좋아서 한다고 하는 것은 다 해야

한다며 없는 살림에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엄마를 괴롭혔다.


무슨 일을 하든 자격이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참으로 슬프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젊은 날의 실패를 거듭한 원인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죄라고 하거나

제대로 된 지원이 없어서 이 모양 이 꼴이라며

아무 생각 없이 한탄스러운 말을 내뱉곤 했다.


이를테면, "나는 뭐 남들처럼 용돈도 못 받고,

공부하는데도 돈 걱정하면서 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필사적으로 살려고 아등바등하던 엄마에겐 분명히

날카로운 대못이 심장에 박히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냉정하고 담담한 어조로

나를 바로 일으켜 세웠다.




"니는 엄마, 아빠가 이렇게 못 배워서

이렇게 사는 걸 보고 느끼는 게 없나?"


"네 삼촌들은 네 아빠랑 달라서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스스로 일어서서 저렇게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너는 그렇게 못났게 살 거냐?"

(실제 작은 아버지들은 맨 밑에서부터 시작해

내로라하는 높은 고위직까지 올라가셨다.)


"네가 잘되면 누가 좋냐? 결국 네가 좋지!

엄마 호강은 시켜주지 않아도 되니까

니라도 똑바로 살아서 일어서야지!"


"제발 엄마 소원이다! 정신 좀 차리자!"


엄마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고,

세상에서 제일 아프다는 팩트 폭행이었다.


이 집의 장남이자 엄마의 희망인 내가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이 드는 생활을 했다.


나는 그때서야 정신을 좀 차렸다.




엄마의 희망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팩폭을 맞은 이후

남은 20대를 치열하게 보냈다.


먼저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를 했고,

다행히도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고시반에 들어가

새벽 쪽잠을 청하며 7년이나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매 학기마다 성적관리를 치열하게 해서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소위 머리는 딸렸지만 엉덩이로 공부하는 노력파

였기에 둔한 머리로 밤늦게까지 학구열을 불태웠고,

그렇게 점점 엄마로부터 독립을 했다.


학교를 졸업하던 그날,

엄마는 학사모를 쓰시며 세상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셨다.


엄마는 진심으로 나의 졸업을 축하해주셨고,

졸업식날 사진을 찍으며 엄마는 이런 말을 하셨다.


"네가 이제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됐네.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나는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졸업식에서 엄마는

처음으로 나와 함께 점심을 드셨다.




To. 엄마


먹고살만한 지금,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추억해보니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네요.


돌이켜보니 참으로 엉망이고, 별로였던 아들의 삶이

그나마 지금은 먹고 살만 할 수 있도록...

아들의 인생이 엉망으로 뒤틀어지지 않도록...

엄마는 늘 외로운 북극성처럼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빛을 밝히셨네요.


참으로 고맙습니다.


만약에 엄마가 제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의 제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저와 같은 아이를 거두었다면,

저는 잘 키워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결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 못할 것 같네요.


엄마!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요즘 나름대로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다 엄마 덕분에 배운 것들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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