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누리지 못한 것들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행복한 지금이 되기를..
위인전을 읽으면, 그 시작은 보통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이 성숙한 삶을 살아내는데 그의 뒤에는
늘 큰 스승 같은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있었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났다면, 엄마가 있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게 할지는 그에게
좋은 엄마가 있었는가에 달려있는 것 같다.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해 줄 구성원으로
성장시키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엄마의 사랑에 달려있다.
누구나 엄마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세상의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나의 위대한 엄마에게는
마음속 깊은 경의를 표한다.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신혼여행이란 개념이 생긴 것은
1970년대 즈음으로 그 당시에도 형편에 따라
경비를 감안해 여행지를 선택했다고 한다.
국내 최고 휴양지로 불리는 제주도는
그 당시 그래도 좀 산다는 사람들이 주로 갔었고,
서민들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유명 관광지에 가서 택시를 타고 다니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해외여행도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가
열리면서 해외여행은 그리 어려운 일이 되지 않았다.
이제 코로나도 엔데믹으로 가면서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늘어난 것 같다.
여행!!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
어린 시절 먹고사는 게 힘든 시절이었기에
우리 집 형편에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사실 여행은커녕 사는 곳 주변에 뒷산에라도
오르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운 호사스러운 날이었다.
왜 여행을 안 가냐? 는 질문조차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내가 취업을 하고서
수중에 꽤나 큰돈을 만지면서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은 호텔에서 자고,
좋은 경치와 볼거리를 보고,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것들을 먹고,
그렇게 여행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취업을 하고 나서
엄마의 기쁨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매 여름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성인이 된 후 엄마와 함께 한
첫 여행은 설악산 여행이었다.
바다 경치를 보며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엄마! 바다경치 죽이지?"
"그래 진짜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 가는 건
진짜 처음이네!"
"그러게 우리 가족 진짜 처음으로 이렇게 여행 다니는 것 같다. 내가 돈 많이 벌 테니 이제 우리 가족 맨날 여행 다니자!"
호텔에서도 엄마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했다.
나도 사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는데
숨길 수 없는 촌티를 어설프게 숨겨가며
엄마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호텔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뜬 눈으로 지새운 듯 눈 주위가 부어있었다.
"엄마! 잘 못 잤어? 눈이 왜 그래?"
"어.. 일어났어? 준아! 엄마 너무 좋아서
밤새 한 잠도 못 잤어.
어찌나 좋은지... 이상하게도 눈물이 자꾸 나오네"
"우리 준이 덕분에 엄마가 호강을 하네"
"고마워 아들~"
엄마는 푹신하고 깨끗한 호텔 침대에 누워 있으니
이게 무슨 호강인가 싶으셨다고 한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뱉는 엄마를 보며,
"나는 이거 별거 아닌데 이게 그리 좋았어?"
"우리 엄마 너무 고생만 하고 사셨네..
이제 내가 호강시켜 드릴게"
우리는 아침부터 부둥켜안으며 울었다.
인생에 얼마나 즐거움이 없었을까...
그때의 여행이 있은 후
매년 엄마와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고작 며칠간의 여행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내게 성공을 해야 한다는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덕에 열심히 살았고,
꽤나 먹고 살만해졌다.
그리고 나는 건방지게도 내가 그저 열심히 해서
이젠 먹고 살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 되어가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리고 엄마와 했던 그 약속들은 잊은 채 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사는 동안
나는 엄마에게 입으로만 효도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엄마는 아버지의 계속되는 폭력에 맞서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셨는데
나는 뒤늦게 사태의 위험성을 알고
두 분의 별거에 앞장섰다.
'나는 그렇게 불효를 했다.'
명절 때마다 익숙하게 갔던 본가에는
더 이상 발길을 하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엄마는 우리 집으로 오셔서
그때처럼 여행을 다녔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말이다.
나와 함께 살아주는 아내는 심성이 참 곱다.
평소에도 늘 다른 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인데
엄마를 한 명의 여자로 대하며 그 속상한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진심을 다해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엄마는 늘 내가 딸을 하나 더 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산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아내는 온천과 수영을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을 고려해
해외 가족여행을 제안했다.
그렇게 엄마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일본 오키나와섬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낯선 타국에서 엄마는
나와는 달리 오히려 아주 즐기고 계셨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도 있었을 텐데
그저 이 새로운 상황들을 온전히 즐기고 계셨다.
나도 여행을 가서 내심 좋았지만,
나는 엄마를 보며 행복했다.
엄마는 그렇게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고,
새로운 것들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다.
오키나와의 호텔에서 엄마는 아내에게
"준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 네 덕분이다. 고맙다"며, 귀걸이가 든 선물을 건네셨다.
엄마는 내게 아내가 없을 때마다 신신당부를 하신다.
"네 마누라한테 잘해라! 저런 사람 또 없다.
너는 절대 네 아버지처럼 살지 말고
네 마누라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라."
"엄마! 당연하지! 나 못 믿어? "
"당연히 우리 아들 믿지! 그러니까 잘해"
"알았어"
To. 엄마
엄마! 요즘 노래 중에 이진호라는 가수가 부른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란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 듣다 보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엄마 폰에 꽃 사진이 왜 그리도 많았는지...
엄마 폰엔 왜 자기 얼굴 나온 사진 하나 없었는지...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남은 생은
젊은 날 누리지 못한 것들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행복한 지금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으로 가득 찬
특별한 하루가 되길 바래요.
From. 아들
여행을 가는 게 옷 한 벌 사는 게
어색해진 사람
바삐 지내는 게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해진 사람
한 번이라도 마음 편히 떠나보는 게
어려운 일이 돼버린 사람
동네 담벼락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아직도 걸음 멈추는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티브이를 켜고 잠이 들어버리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진 한 사람
티브이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얘기에
혼자서 울고 웃는 한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초록빛 머금은 새싹이었지
붉은빛 머금은 꽃송이였지
나를 찾던 벌과 사랑을 했지
그 추억 그리워 꽃밭에 있지
나는 다시 피어날 수 없지만
나를 찾던 벌도 사라졌지만
나의 사랑 너의 얼굴에 남아
너를 안을 때 난 꽃밭에 있어
- 김진호,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