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공로상

엄마의 정년퇴직을 기념하여 우리는 축하파티를 열었다.

by Hyean de TJ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닐 것이며,

아마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하셨다.


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한 나이가 되거나

회사가 정한 기간이 되어

자연스레 회사를 떠나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날이 찾아왔을 때...

그 상실감과 미련, 복잡 미묘한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하고,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더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냥 뭔가 아쉬운 마음이랄까...

딱 그 정도의 마음일 것이다.






엄마는 커튼 만드는 일을 오래 하셨다.


내가 생각한 커튼은

천장에 매달린 채 창문을 가리기 위한 용도도 있고,

여름철에는 햇빛을 차단해 열을 막는 기능을

겨울철에는 보온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집안 인테리어 요소로

창문을 더 이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커튼은 사실 없어도 되는 것이지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물건이다.


그런 중요한 물건을 엄마는 정성껏 만드셨다.






엄마는 30년 동안 커튼을 만들면서

천장 길이만큼 늘어뜨려지는 커튼의 무게를

이겨 내기 위해 손목은 늘 파스를 붙여야 했고,


구겨진 천이 모양을 갖추려면 뜨거운 다림질을

하기 위해 팔과 손은 늘 데인 상처가 남았다.


또 어떤 날엔 돌아가는 미싱의 바늘이

손가락을 관통해 구멍이 뚫리는 일도 있었다.


오래도록 그 일을 하면서

한 번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을까?


단언컨대 "아니" 없었을 것이다.


입에 풀칠하려면 해야 했던 그냥 일이었고,

그 어떤 일의 의미도 없었다.


그저 생계를 위한 도구였을 뿐

엄마의 미싱은 그저 또 다른 수갑이었다.






내가 이리도 단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의 경우에 어떤 일을 30년 정도 했다면,

나름대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을 것이고,

그 일을 통해 수익을 얻어왔다면, 나름대로의

보람도 즐거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늘 나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를 쓰셨고,

먼지 가득한 커튼 가공소에서 일하는 것을

늘 부끄럽게 생각하셨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하신 후

엄마는 절대 미싱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평생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책 한 권 읽는 것도 힘들어하고,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환갑이 넘어서도 그나마 몸이 성하니

일을 해야 한다는 엄마는 미싱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셨다.


그 일이 있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학원에 등록해 다니며 자격증을 따셨다.


엄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로 커튼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직접 물어봤다.)






엄마는 회사가 평소 야박하게 굴어 정말 싫었는데

그래도 마지막에 회사에서 정년퇴임식을

해준 일이 참 고마웠다고 하셨다.


살면서 상 하나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회사 다니면서 근속 포상도 받고,

정년퇴직 표창장도 받아서

너무 좋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부부와 동생 부부는

엄마의 정년퇴직을 기념하여

축하파티를 열었다.


평소 엄마가 좋아했던 회를 사고,

축하파티에 빠질 수 없는 케이크와

와인도 함께 준비했었다.


그리고 30년을 희생한 엄마의

노고와 희생을 기념하여 공로상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축하편지를 건네었고,

우리 형제는 엄마에게 공로패에 적힌

문구를 읽으며 엄마의 고생스러운 30년에 대해

감사함을 전해드렸다.


"나는 너희들한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너희들이 다 잘 커서 이렇게 행복하게 해 준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는지 모르겠다."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며 대성통곡을 하는

엄마를 안으며 우리는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엄마에게는 잊지 못할 축하파티가 되었고,

나에게는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결코 잊지 못할 선물이 될

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엄마는 한참 동안이나 울음을 멈추지 못했고,

자신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몇 번이나 했다.


원래 가진 것이 없어서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풍족하게 해 준 것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늘 분에 넘치게 받았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어쩌면

엄마가 가진 모든 것들을 내어주셨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엄마를 만나서...




To. 엄마


엄마를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엄마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네요.


어쩌면 그냥 엄마에게 허심탄회하게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주제로 편지를 쓰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이 글을 쓰면서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얼마나 가엾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네요.


기록하지 않는 것은 사라질 테니까

위대한 엄마이자 가엾은 엄마의 일생을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엄마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아들은 더 열심히 살 겁니다.


그리고 아들은 희망합니다.

엄마의 남은 인생이 빛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살피겠습니다.


사랑해요! 엄마!


From. 아들


P.S)

SG워너비의 김진호 씨가 부른

가족사진이란 노래가 어쩌면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 같네요.


늘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

엄마에게 이 노래를 불러드릴게요.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

설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 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 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 김진호,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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