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와인에 스며드는 중입니다.
나를 오래 두고 본 친구들에게 “내가 요즘 부쩍 와인을 즐기는 생이 되었다.”라고 말하면 “네가? 의외네”라는 반응이 따라온다.
원래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았고, 술을 가까이 두고 있는 이들을 오히려 멀리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는 경험이 즐겁지 않았고,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뱃속에 채워 넣다 보면 어느새 불편해지기 때문에 술은 그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무의미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러니 술을 마시는 것이 즐겁지 않을 수밖에..
그런데 왜 갑자기?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이가 들어서? 아니면 삶이 괴로워서? 먹다 보니 술이 늘어서? 등등의 대답이 생각날 수 있겠으나 그건 나의 대답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제는 술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꽤나 미각에 예민한 편이고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 못 하는 성격인데 화학 냄새가 가득한 소주 같은 술만 마셔대다 보니 느끼지 못했던 것일 뿐이었지 좋은 술을 접하며 자주 마시고 음미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아.. 술은 맛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맛있는 술”에 눈이 뜨인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술을 찾다 보니 술 중에는 와인이 가장 맛이 풍요로웠고 다양해서 나의 호기심도 채우고 혀의 만족감도 채울 수 있었다.
온전히 그 맛을 충분히 그리고 오롯이 느끼고 싶은 충동이 강할 수밖에 없는데 부푼 기대감을 갖고 와인 병을 따다 보면 코르크 마개가 찢어지거나 부서지는 불상사가 간혹 생기곤 한다.
정말 왜 마개를 이따위로 만들어가지고…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다.
이렇게 될 때 보통은 코르크 마개를 밀어 넣으면 된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나는 절대 밀어 넣지 않는다.
일단 코르크 마개가 부서지면 그 나무 가루들이 와인과 섞이면서 와인이 가진 본연의 맛을 해치기 때문이고, 그 미세한 가루들이 와인에 둥둥 떠다니면 더 이상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채에 받쳐서 거르면 된다고도 하지만 이미 와인에 젖어버린 코르크 마개는 더 이상 마개가 아니라 와인의 일부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면 나는 그냥 버려버린다.
어쩌면 마치 절벽에 내몰린 사람을 그냥 밀어내는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이 병 안에 든 맛있는 술이 이 코르크 마개 하나 때문에 망쳐지는 게 두렵다.
그래서 기를 쓰고 마개를 빼내려 한다.
포기하지 않고 살리려고 하면, 살릴 수 있다.
삶의 원리는 단순하고, 나는 또 배운다.
돌발변수가 있어도
결국 사람이 의지를 가지면
문제는 풀린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그것은 실패가 아닌 성공을 위한 과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