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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Jan 02. 2023

새해가 되어도 나잇값을 못하다

나는 지금 사랑받고 있습니다.

12월 31일 마지막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본가로 향했다.


오랜만에 엄마얼굴을 보는 터라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을 준비해서 가느라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으나

결국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포항에서 뜬 회가 맛있으니

준비해 가겠다고 큰 소리를 쳤고,

과메기도 제철이니 상황을 보고

준비해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내뱉은 말에

아내는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며

괜찮은 횟집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그냥 되는대로 죽도시장에 가서

회를 뜨면 되니 괜한 수고를 하지 말라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현실은?

연말이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고, 결국 죽도시장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차를 돌려야 했다.


앱에서 확인되는

죽도시장으로 향하는 차 대수는

무려 217대!!


전적으로 내 실수였고, 불찰이자

나의 똥고집이었다.


아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

배민으로 과메기를 주문하고,

다시 횟집을 알아보려니

영일대의 횟집들은 포장주문을

받지 않았다.


아뿔싸!!


미리미리 움직이지 않은

내 탓으로 애꿎은 시간만 흘렀다.


결국 회는 주문하기가 어려웠고

대체제로 물회를 선택했다.

그나마 물회는 포장이 되니까...


아무튼 그렇게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본가로 향했다.



새해가 되면,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데

철이 들거나 생각이 깊어져야 하는데

도통 이 놈의 생각, 행동과 말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고집과 아집만 강해져서

귀는 닫히고, 남 말을 듣기보단

내 말만 하기 바빠진다.


내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란 말이 있으니

나 역시 그런 기대에 부응을 하는 편(?)인데

참 모질이 못난이 남편이다.


지난 한 해를 슬쩍 기억을 돌아봐도

나는 늘 아내에게 의존하며

아내의 헌신적인 지원과 보살핌으로

겨우 사람구실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아내는 참 감사한 인연이고,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오랜만에 엄마를 봤더니

반가움이 용솟음친다.


문을 들어서니 맛있는 음식냄새가

코를 쿡쿡 찌른다.


분명 회와 과메기를 가져간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엄마는 혹시나 내 새끼 배곯을까 싶어서

양지고기도 삶아놓고

밥도 새로 지어놓으셨다.


엄마는 늘 그렇게

자식걱정 손주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나는 엄마 앞에서는

늘 바보같이 미련한 아들이 된다.




상다리가 휘어질 듯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에

물회와 과메기를 허겁지겁 먹었고,

미련한 나는 또 장염이 왔다.


그것도 새해 첫날부터...


"살려줘... 약 좀 사다 줘.."


멀쩡하게 잘 지내다가도

엄마 앞이라고 또 어리광을 부리는

나 자신을 보니 한없이

못났음을 인지한다.


그래도

엄마는 그동안 내 새끼 고생하더니

몸이 안 좋아서 저리 드러누웠다며,

뭐라도 먹으라고 죽을 쒀주신다.


미안하고, 참으로 엄마 얼굴을 뵐 낯이 없다.

그리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아내는 그저 안절부절이다.


참... 여러모로 민폐다.


새해가 밝았다고,

아침부터 떡국을 끓인 엄마는

그래도 한 입이라도 뜨라며

떡국 한 그릇을 내어주신다.



물색없는 나는 그걸 또 받아먹는다.


그렇게 새해가 밝았고,

새해가 되어도 나잇값을 못한다.


그래도 좋다.


나에겐 사랑하는 엄마와 아내가 있고,

나만 바라보는 자식이 있으니

그걸로 됐다.


그리고 또 철없는 소리를

입으로 중얼거렸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나는 사랑받고 있음을

그리고 나는 행복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뜨거운 사랑 속에

마음이 노곤해진다.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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