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同病相憐): 환우애

우리는 깐부야

by Carry

끝이 보이지 않는,
아무리 달려도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빛이 없는 터널 속에서,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 놀라웠다.
그리고 훗날, 그것이 바로 환우애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이해관계’라는 이름 아래
각자의 명분을 지키며 살아간다.


내가 가장 힘들던 시절, “편하게 택시 타고 가라”며
모범택시를 잡아주시고,
용돈까지 쥐여주셨던 외삼촌이 떠오른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지만,

매일 아침 출퇴근길,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던
그 지하철 속의 나.

높은 힐을 신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제 시간에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던 그 시절의 나.


물론 지금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여전히 그렇게 행동하는 나 자신을 보며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게 ‘나’였고,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내 기억 속 삼촌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던 ‘든든했던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가까이 있는 조카를 챙기지 못했다며

식사를 함께하고, 끝까지 택시비를 쥐여주며 배웅해주시던 그 모습.


그런 삼촌에게,
이제는 내가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시고 식사를 했고,
그날 나는 밝고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 더욱 애썼다.



외삼촌,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삼촌은 언제나 제게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분이었어요.


요즘 저도 많이 지쳐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지만,
삼촌과의 약속만큼은 꼭 지킬게요( 그 약속이란.. 내 삶을 내 스스로 놓지 않는 것이었다).

삼촌도 건강 잘 챙기시고,
앞으로는 제가 삼촌께 맛있는 밥 사드릴게요! 힘내세요!



[외삼촌의 답변]


00 의 밝은 미소 속에 담겨있는 힘겨움을 보며
삼촌도 많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00 이는 너무 좋은 사람이다.

삼촌은 우리 00이가
현재를 잘 버텨내고
또 누군가에게는 00에게 없었던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손 내미는 자가 되면 좋겠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버텨내기조차 힘들겠지만,
삼촌하고라도 같이 버텨내자.


삼촌도 오늘 술 한잔 했는데,
우리 00 이의 미소 속에 있는 그 아픔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누구보다도
우리 00이 가 지기 싫을거니까 절대 지지 말자 알았지?


삼촌이 정말 능력이 있어서
우리 00이를 어떻게 도와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삼촌이 우리 00이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고
우리 00 이가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오늘은 삼촌이랑 얘기한 것 생각하면서 편안히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삼촌의 답변을 읽고,

그 동안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소리내어 울지 못했던
먹먹함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삼촌은 능력 있는 분이다.
그리고 삼촌 역시 어쩔 수 없는 본인 삶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나와 같이 무력하고, 절망하고 회의감을 느끼는
우리는 ‘깐부’ 였다.


그날의 나는, 최대한 절제된 언어로 나를 전달하려 애썼다.

하지만 삼촌은 알아차리셨다.


내가 웃고 있어도 슬프다는 걸.

미소로 나의 힘듦을 감추려했지만,
삼촌에겐 그 모든 것들이 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존경하는 삼촌이 나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힘들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깨달았다.


마음이 아픈 이들이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누구보다 단단한 연결로 묶인다.

그 이름은 전우애보다 더 끈끈한 '환우애'다.


그리고 그 이름 아래,

오늘도 우리는 함께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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