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워주는 약을 주세요

도마뱀 꼬리와 마음의 절취선

by Carry


마음과 정신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게,
어떤 기억은 단기기억으로
어떤 기억은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하지만 문서나 고지서 따위에 자를 수 있게 나타낸 선인
‘절취선’처럼
우리 마음과 기억에 절취선이 있다면,

나는 언제부터의 나의 기억과 마음을 절취해야 할까?

달처럼,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흘러가는 움직이는 구름처럼
나의 절취선의 위치도 계속 변화할까?

처음 정신의학과를 방문해서
정신의학과의 진료 방식에 혼란을 느꼈을 때 절망하며 의료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제발 저에게 기억을 지워주는 약을 주세요.

제 삶에 좋았던 기억이 있었어도
모두 다 삭제하고 잊고 싶습니다.

좋아했던 사람들과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행복했던 추억들

마음 아프고 여전히 괴로운 지금도 모두 다 삭제하고 싶어요.

남겨두고 싶은 추억이나 기억 같은 것 필요 없습니다.

제발 제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약을 처방해주세요'


도마뱀 꼬리는
위기와 충격을 받을 때 잘라낼 수 있다.

도마뱀에게 그 때는 언제여야 할 것일까?

그렇다면 도마뱀은
그 위기와 충격의 상태로 잘려진 꼬리를
‘트라우마’로 기억할까,
아니면 ‘휴 다행이다’라는 안도로 잊혀지는 것일까 궁금하다.

나의 마음에 기억의 절취선이 있다면,
아마도 그 기억의 절취선은 변덕스럽게 옮겨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날은 누구를 절취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행복했다고 생각했던 어떤 날을 절취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음악을, 어떤 향기를, 어떤 계절을

도마뱀의 꼬리처럼 그렇게 그 기억 모두를 잘라낼 것 같다.


자, 이제 제발

제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약을 처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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