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센터가 사라져서_

A/S 센터가 사라져서 평생 고칠 수 없는 깨진 액정과 같던 시절

by Carry

- A/S 센터가 사라져서 평생 고칠 수 없는 깨진 액정과 같던 시절 -


2024년 3월 1일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영원히 고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깨진 액정 사이로 Message 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명확하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대략적인 내용은 알 수 있었다.


정신의학과의 진료 시간이
10분도 채 되지 못한 적이 자주 있었다.


10분~20분이라고 정해져 있는 진료 시간의 코드인 의료 수가에도
나의 진료시간은 10분이 되지 못하였던 적도 종종 있었다.


바빠 보이는 의료진이 마음에 걸려

상담 중 휴대폰으로 타이머를 켜서 시간을 재던 나였다.


종합병원의 바쁜 외래에서

의료진과 마찰 없이 어떻게 상담과 치료적 도움을 받을지

늘 고민해야 했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결국 돈으로 환산되는 '값비싼 시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료를 마친 후
머리에 물음표만 가득 남긴 채
진료실 문을 나서던 돌아오는 그 길은

혼란스러워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걷던 병원 밖 풍경은
참 이상하게도 늘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슬펐다.


우연히 읽은 정신의학과 서적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상담 기술이 있어도
너무 멀고 비공감적인 태도는 오히려 해가 된다”고 하였다.


Carl. Jung은
영혼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접촉할 때
그것을 해결하는 건 이론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창조적 개성”이라고 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성,
그 안의 개별성을 존중할 수 있을 때
내담자도, 치료자도 함께 나아간다.

하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그 보편성을 누가 정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어느 날 밤
내가 느낀 감정과 치료자에 대한 마음을
언젠가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이해받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속이 터질 것 같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어디에든 흘려버리고 싶었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할 때
살고 싶어서 병원에 가는 게 아니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조차 양가적으로 다가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한동안

아주 오래 한동안

혼란스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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