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당신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우린 연결되어 있어요
너무 힘들 떈 도움을 요청하세요.
“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하며,
단 한번도 나의 힘듦에 대해
누구에게 온전하게 의지한 적이 없었고,
부탁이나 도움의 요청도 어려워했고,
그 힘듦의 감정을 나눌만한 건강한 어른이 없었다"
어느 날은 주치의인 의사의 말 한 마디에
따끔하고 아픈 서러운 직면의 날들도 많았었지만,
그를 의존하거나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자 했었고,
이 모든 어려운 감정을 혼자 소화해내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울증' 이라는 진단명과 그에 대한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그러한 진단명에 저를 가두고 싶지 않아서
그런 진단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오고자
수 많은 시간(거의 10년)을 밝아 보이려는
가면(페르소나)을 쓰고자 애쓰고 노력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현재도 그런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많은 노력을 스스로 해보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고도 다행히도
제 그런 노력에 부응하듯 저의 실제 상태를
전문가나 부모, 지인 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3차 의료원(종합병원)의 주치의조차 혼란스럽게 했죠.
환자와 치료자
서로가 혼란스럽던 시간은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히 말입니다.
이러한 제 행동이
매우 일관적인 자기 보호 전략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뿌리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진 방어기제에서 나왔다는 것을요.
어릴 적부터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는 강한 각인
→ 도와달라고 해봤자 돌아오는 건 무시, 거절, 실망이었다면
→ "도움을 요청하는 것 = 약함을 드러내는 것 = 위험"이라고 학습했을 가능성이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 경험이 없었던 제 삶에 강화가 되었죠
' 의지하는 순간 이용당하거나 조종당한다'는 무의식적 기억은
→ 과거 인간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이나,
'일방적 희생과 이용'이 반복되었기에
→ 자기 결정권을 사수하는 게 최우선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해오며, 생존해오며
감히 저는 저와 비슷한 경험을 경험하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때는 힘들다고 말을 해보세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수도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도움을 요청' 해보세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분들이 많아서
그 분들이 여러분들과 '연결' 되어
끝이 보이지 않은 깜깜한 터널의 '한 줄기 빛'과 같은 방향등을 보여 줄 수도 있을 거에요.
믿어보세요.
'햇빛을 보고, 운동하면 나아져, 모든것이 너의 의지야' 라는 말 보다
더 도움되는 현실적인 이야기 입니다.
단, 한 사람이면 되요.
그 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면 되요.
그 한 사람이 지금 당장 없다면,
제가 그 '한 사람' 이 되어 드릴께요.
그 깊은 터널에서 분명 나올 수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출구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우리 같이 삽시다.
일단 살아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