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해석하는 사람들
처철하게 혼자인 것 같은 이 과정에서
손가락의 지문(指紋)처럼
나의 성문(聖紋)을 알아듣는 사람들을
종종 이 과정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내색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그 뒤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창하지 않은 2막이다.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2막은 없기를 바랬다.
방황을 두려워하지 말라.
방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괴테도 80세가 되어야 방황의 끝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스 말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알레테이아 Aleteia’ 라고 하고
진리를 뜻하는 말 역시
그 음이 같은 ‘알레테이아 Aletheia’ 라고 한다.
h 자 하나로 방황이 진리가 된다.
그리고
목소리에는 지문(指紋)처럼 자신만의 성문(聖紋)이 있다.
글자로 나타낼 수 없는
자신의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는 말의 힘을 다시 생각할 때이다.
2,500여 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가 말했다.
“말은 내 몸 안의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문자는 내 몸 밖에 있는 것이다”
기억으로 나오는 그 ‘말’ 말의 힘,
그리고 언어로 이루어지는 ‘상담’ 은 그렇기에
내담자의 기억과 나의 기억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는
‘성문(聖紋)의 힘’ 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목소리로 마음까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지 않으면 더욱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런 부분을 알기에
'밝은 척 연기'하며 살아온지난 시간들도 있지만
사실은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울다가도 더욱 밝게 전화를 받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런 나의 성문(聖紋)을 알아차리고
괜찮은지,
하루가 어땠는지
한 번 더 나의 마음을 물어 봐주는 분들이 늘 계셨다.
괜찮다고 했어도,
신기하게도 그 분들은
내가 괜찮지 않음을 울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전화들을 끊고 나면
마음이 더 아리고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