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이야기해야 했던 이유
https://www.lawtimes.co.kr/news/170488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길” 판결문 한 줄이 큰 힘으로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은 자칫 그 특수성으로 인해 피해여성이 2차 피해를 입을 여지가 크다. 피해자는 몇 년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 판결 이후 피해자가 이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고 주위 직장동료들이나 지인들도 그 피해를 이해하고 도와주길 바란다."
2021년 내 변호인이 아닌
1심 담당 검사님께서 도와주신 끝에
2심까지 가서 얻게 된 나의 판결문의 결과이다.
망연자실하던 A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속 주인공은 1심 담당검사인 임상규(39·변호사시험 1회) 검사였다. 임 검사는 "피해자를 재판과정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재판 결과가 혹시 불만족스럽지는 않은지 여쭤보려고 전화드렸다"고 했다.
검사가 직접 전화를 한 것에 깜짝 놀란 A씨는 그동안 B씨의 성추행과 뒤이은 악의적 소문들로 고통받았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임 검사는 A씨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했고, 이어 항소이유서에 1심의 양형이 부당한 이유를 자세히 기술했다.
항소심은 서울남부지법 형사1부가 맡았다. 항소심 과정에서 A씨도 탄원서를 제출, B씨의 성추행 뿐만 아니라 악의적 소문 등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호소했다.
재판장인 변성환(49·사법연수원 28기) 부장판사는 배석판사이던 정의정(41·35기)·신동호(40·37기) 판사와 논의해 "그동안 피해자가 제출한 많은 자료와 탄원서 등을 처음부터 살펴보겠다"며 선고일을 늦췄다.
형사재판과 함께 B씨를 상대로 진행한 민사재판 역시 A씨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사건을 맡은 강영호(64·12기)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은 소액사건이지만 이례적으로 판시 이유를 남겨 A씨가 겪었을 고통에 공감했다.
강 원로법관은 "B씨의 성희롱과 성추행 및 그 이후 대응 과정에서 A씨가 심대한 정신적 고통을 당했음을 인정할 수 있으며, B씨는 이를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며 "B씨는 A씨에게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A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경험한 판·검사님들은 피해자의 상황과 마음에 깊이 공감했던 분들이었고, 적어도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던 분들"이라며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그 분들 덕분에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판사님들과 검사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저와 같은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법부와 검찰이 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종종 어떤 판례와 기사에 "자신의 자녀라도 그럴 것인가? " 라는 댓글을 보았었다.
판사와 검사를 비하하는 표현의 댓글도 보았다.
공정한 판결을 위해 AI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글도 보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사법부는 가해자 중심의 1심이었지만,
이후의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라는
양심과 도의적인 정의로움을 가진
본래의 초심을 잃지 않은 검사님과 판사님, 배석 판사님이 계셨다.
'검사는 바빠서 피해자가 제출한 자료 읽지도 않고 찢어버릴거에요'
'대충 이 쯤에서 합의하고 끝내세요'
'적당히 작작하고 끝내요'
라고 하기엔
내 인생이었고
내 인생에 다시 없을
평생 다시 없을
처음이자 마지막의 재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변호인을 두고
"제가 알아서 할테니, 그 동안 도와주신 것은 감사하고
이제부터는 제 스스로 할께요"
라고 하고, 홀로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나홀로 소송'이었다.
정상인 처럼 보여야해서
"월화수목금" 은 8시 30분 출근이었지만
오전 7시~ 7시 30분 사이에 출근했다.
마음은 제 정신이 아니더라도
겉으로 보이기엔 정상인으로 보여야했다.
누구를 그렇게 내 인생에 존경해 본 적도 없었다.
토, 일요일엔 방문을 잠그고
부모님이 그토록 말렸던 소송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존경하는 판사님께, 존경하는 검사님께'의 탄원서를
자필로 하얀 A4 용지에 적기 바빴다.
팔목 아프게 적던
그 수 많은 용지는
배고픈 점심시간 쑥덕거리는 직원들 사이에서
밥을 먹기 어려워
그 짧은 점심시간 근태에 문제 없도록
빠듯한 그 50분을
지하철을 타고 검찰청, 법원을 다녔다.
그렇게 그렇게
그땐 그렇게 살았다.
2025년 현재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는
다시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 나를 도와줬던 판사님, 검사님, 배석 판사님
모두를 칭송하고 싶었다.
아직 대한민국 법원에
이렇게 따뜻하게
이렇게 진지하게
피해자를 위해 고민하는 법관이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 분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문제는
아직도 내가 그 분들의 현명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내 삶을 살지 못함이 너무나 슬프지만,
언젠가 나도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며
웃으며, 행복할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기록으로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