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간 속 여러 상황으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사회적으로 승인된 주체들 속에서
-조직은 조직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전문가는 전문가답게 를 순진하게 믿으며
더 이상 나 홀로 이 모든 과정을 이겨 낼 여력이 없던
희망고문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역시 '연인은 연인답게' 까지의 과도한 기대는 아니었지만
아침 저녁으로 나의 안부를 물으며,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일상을 소소하게 공유했기에
나도 모르게
당시의 삶의 끈을 놓고 싶던 나에게는
현재는 하늘나라에 있는, 유일했던 나의 반려견과
유일하게 '밥 먹자' 로 한결같이 이야기 했던 그가
삶의 의욕을 모두 잃었던 나에게는
'삶의 의욕' 과 같은 '밥심'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처음부터 내가 밝은 줄로만 알았던 그는
나의 힘듦과 상처를 듣고도 나를 좋아해줬었고,
나는 그런 그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현재의 나 홀로도 버거운
함께 들어주겠다고 했던 '나의 백지'는
이미 여러 글들과 나의 눈물로 너무도 무거웠던
그런 찢어지기 쉬운, 함께 들기 어려웠던 종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그는 그 과정 모두를 잊은 듯 하지만
나의 그 무거운 종이를 '함께 들어주겠다' 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했었다.
우리가 서로 함께 한 일은 '밥 먹는 일' 이 전부였다.
아침, 저녁으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점심 때 잠시 만나 '점심을 함께 먹는 일' 이 이 연애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처음해보는
알 수 없는 독특한 관계의 이 연애에 감사하려고 했었다.
아마도 그만큼 그때의 나는
그 이상한 관계조차 위로받고, 따뜻했었다고 착각했었다.
일련의 시간을 경험하며,
이 연애가 정상적이지 않고, 이상함을 알게되었다.
알고서도 내 마음이 모질게 정리될 준비가 안되어서
알고서도 그냥 애쓰며 모른척 만나기도 했다.
많은 눈물과 많은 힘든 시간,
많은 과정을 통해
오늘에서야 알게되었다.
이 만남이 준 의미를...
퇴계로를 가면 유리창 안으로 가게의 강아지들이 보인다.
그 강아지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겼다.
그리고 예전의 나도 그 길을 지나며
그 강아지들이 반갑게 유리창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에 잠시 멈춰서서 그 유리창 속으로
그 강아지들과 눈 맞추며, 잠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가 가야할 목적지가 있어서 그 강아지를 뒤로 할 때면, 괜시리 미안해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그 강아지를 보기도
괜시리 더 미안했었다.
왜냐하면,
그 강아지는 나를 알아보고 또 다시 기대하고
내가 그 강아지와 함께 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는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매몰차게까지는 아니었지만,
애써 그 강아지를 외면하고 지나가야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말하지 못한는 동물이지만
그 강아지도 어쩌면 나를 알아보고,
또 다시 반가워하며, 작은 기대라도 할까봐였다.
나에게 현재 만났던 남자친구는
그 퇴계로를 지나가며 유리창 문을 두들기며
안에 있는 강아지를 불러내어, 희망을 주었던 행인 1 이었던 것 같다.
유리창 안에서,
그 행인 1이 나와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이자.
나에게 따뜻한 누군가가 될 수 있다고 착각했던 나는
그 유리창안에서 지나가는 사람의 두들김과 호의에
한 껏 기대하며, 해맑게 웃고 있는 강아지가 아니었다 싶다.
그래서 나는
희망고문이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