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나 버겁다

셰프의 귓속말

by ClaireH



[예전 그와 노래방 사건 이후]


그때 그놈과 나 사이는 잦은 마찰로 얼룩졌다.

우리 사이에는 한 명의 지인이 있었다. 그 지인은 내가 20살 처음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할 때, 나의 첫 인생 사수였던 ‘쌤’이었다. (미용실에서 디자이너 선생님을 줄여 부르는 은어.) 쌤은 내게 큰 도움을 주셨던 사모님의 친동생이었다.


관계는 복잡했지만 정리하면 간단했다.

나의 쌤의 친누나는 사모님이고, 나의 두 번째 전남편은 사모님의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이었다.

쌤은 미용 일을 접고 친누나를 돕기 위해 회사에 들어왔고, 그곳에서 쌤은 그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어느 날 우연히 식사를 하게 되었고,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취지로 중재 자리가 만들어졌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쌤은 아무래도 남자였던지라 ‘가장’으로서의 그놈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운 듯했다.


“남자가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지.”

“가장의 무게가 무겁지.”


그 말들은, 그놈이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른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너무 불쾌했다. 그래서 당당히 말했다.


“저는 이해 못 하겠어요!”


그러자 돌아온 말.


“네가 그런 걸 이해 못 하니까 이혼을 했지!”


“네????!!!!”

그 한마디에 쌓여 있던 내 마음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내가 이해심이 부족해서 이혼했다니.

내 자존감이 그 자리에서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넓다 해도, 내 두 눈으로 다른 여자와 노닥거리는 모습을 본 걸 어떻게 이해하란 말이지?.

그런 걸 ‘이해 못 하는 여자’로 취급당하는 현실이 역겨웠다.


그날 이후 나는 쌤에게서 받은 배움의 고마움을 잊고, 내 인생에서 없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그런 그가 이 회사의 총괄 매니저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현재로 돌아와 [코로나 시기]


내 동생의 친구가 사람을 구한다며 전화가 왔다.


“누나 기계가 오기 전인데요, 한두 달만 있으면 도착해요. 그전까지는 손으로 두드려주셔야 해요. 페이는 확실히 해드릴게요.”


“오케이!! “


생계가 급했던 난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 회사에서 나를 받아주기만 한다면 감사할 일이었다.


이전에, 나는 그 사람(두 번째 전남편)과 이별한 뒤 그가 회사에서 물건을 빼돌린 사건이 발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 이름으로 오더 한 물건을 이 회사 창고가 아닌 자기 창고로 빼돌린 것이다.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자 내 억울함도 함께 풀렸다.


하지만 쌤에게서 받은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러던 쌤이 내게 “오해해서 미안했다”라고 전해왔다.

쌤에게 처음으로 받는 사과였다. 그동안 모진 말을 내뱉던 쌤이 건넨 사과라 더욱 어색했지만, 동시에 지난 모든 말을 대신 사과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음에 상처 난 자리에 후시딘을 바른 느낌. 조금씩 치료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 돈가스를 만드는 일을 했다.

수백 장의 고기를 일일이 해머로 두드렸다. 하루하루 정해진 양은 없었고,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목표였다. 주문은 밀려 있었고, 내 손목은 점점 상해갔다.


이 일을 함께하던 직원이 있었다. 전직 케이크 업체의 셰프라고 했다. 결혼한 아이 아빠였고, 쉬는 타임도 같아 둘의 호흡이 맞아야 했다.

그런데 그가 포장 작업을 하는 내 옆으로 와서 귓속말로


“이 일 하니까 편하지?”

라고 속삭일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별 말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왜 하필 귓속말일까. 매번 그럴 때마다 불쾌함이 쌓였다.


게다가 그는 내가 지시받아 다른 작업을 도울 때마다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신입이라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뿐인데, 그의 요구는 황당했고 점점 불편해졌다.

그가 불만이 있다면 팀장에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왜 나에게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한탄과 푸념이 이어졌고, 점점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편해졌다.

결국 나는 작업 매니저인 동생의 친구에게 연락했다.


“나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 그분 때문에 일하는 게 너무 불편해. 여자를 싫어하시는 것 같아.”


그들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싫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를 바란 게 아니었다.

그가 이상하다는 걸 설명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나를 내보내달라고 한 것이었다. 언젠가 알게 될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그 셰프는 한 사건으로 인해 회사에서 잘렸다.

아마도 자격지심이 큰 분이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조심스레 그렇게 정의해 본다.


세상살이, 여자로 태어나 참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