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무서워, 아침이 올까 봐

자존감이 바닥을 친 시간

by ClaireH

무너져 내린 페인터의 하루


페인터로 생활한 지 여덟 달쯤, 몸값을 올리기 위해 다른 회사로 옮겼다. 이번엔 외벽 위주로 일하는 야외팀이었다. 처음엔 작은 팀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높은 건물 외벽을 전문으로 맡는 전담팀이었다. 하루 종일 다리에 힘을 주고 매달려 있어야 했고, 위험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야외에서 일하다 보니 날씨에 좌우되기도 했다. 일주일에 꼭 이틀은 쉬게 되어, 웨이지가 반토막 나는 날도 많았다. ‘이걸 언제까지 버텨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특히 어느 날은 하우스 디자이너의 요청으로, 합판 위에 특수 페인트와 스펀지로 나뭇결을 표현해야 했다. 무리한 작업이었고, 위에서는 끊임없이 압박이 쏟아졌다. 다시 엎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리니 현장은 숨 막혔다. 평소에도 욕받이였지만, 그날따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떨어질지 모르는 봉 하나를 붙잡고, 쨍쨍한 햇볕 아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나.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고, 이동에만 하루 두 시간이 걸렸다. 차 대출금도 못 내는 상황에, ‘이게 과연 맞는 걸까. 얼마나 번다고 내가 이렇게까지…’라는 회의가 몰려왔다.


내부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재미있고 배울 게 많았는데, 이 팀에 온 후로는 웃음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좋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더 지쳐갔다. 돈 때문에 버티려 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또 다른 전쟁터, 타일 매장


안정적인 수입을 찾아 들어간 곳은 타일 자재 판매점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판매, 자재 오더, 인보이스 발행, 배송 오거나이즈, 진열 정리, 고객 응대, 그리고 매니저 기분 맞추기까지. 멀티워킹의 끝판왕이었다.


몸은 힘들어도 배울 건 많았다. 페인트와 타일은 이제 빠삭하게 알게 되었고, 집 리모델링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이었다.


바로 옆자리, 30cm 간격을 두고 앉아 있는 매니저. 중년 여성인 그녀는 갱년기 탓인지 매일 히스테리를 쏟아냈다. 그 화살은 고스란히 내게 향했다.


“인보이스 발행했어?”

“주문은 넣었어?”

“장부 제대로 써놨지?”

“배송 확인했어?”

숨 돌릴 틈 없이 날아드는 질문에, 매일 밤이 무서웠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워 잠들지 못한 채 출근하는 날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3일 동안 함께 일한 선배가 말했다.

“오래 버텨 주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는지 모르실 거예요.”

그 말이 위로였지만, 내겐 잔혹한 사실이기도 했다.




코로나, 그리고 멈춰 선 시계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시드니도 순식간에 문을 닫았다. 생필품이 동나고, 뉴스에는 확진자 수만 쏟아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강제로 일이 끊겼고, 정부의 빠른 대처로 집세는 반값, 차 대출은 유예되었다. 연금을 미리 찾아 쓰게 해 주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 일 쉬신다면서요? 저희 회사에서 일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 좋아!”


코로나 와중에도 몇몇 유통회사는 여전히 인력을 필요로 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예전에 정육점 사장님과의 일에서 내게 큰 도움을 주었던 그 사모님의 회사였다.


“ 어~~~ 오랜만이야!!

아.. 그리고.. 내가 예전엔 너무 오해를 했었어

마음에 두지 말아 줘.. 그 일은 미안했다 “


마냥 마음이 편치 않은 한 얼굴이

나를.. 그렇게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