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독후감 #17: 세 권의 책을 쓰는 중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세 권의 원고

by ClaireH


아이들은 책장에 꽂힌 세 권의 책 같다.
페이지마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결말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나는 그 책의 독자이면서 동시에 저자다.
조심스럽게 한 줄, 한 줄을 보태며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1. 아현


2012년생,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소녀.

기분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린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가 풀리는 순간, 그 기분이 좌우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100% 확실한 기분’이란 게 없는 듯하다.


오늘은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유가 뭘까. 나는 그 이유가 제일 궁금하다.


요즘 들어 외모에 엄청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세 달 전만 해도 대충 넘어가던 화장에 다시 공을 들인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긴 걸까. 성장기는 끝난 것 같지만 호르몬의 영향인지 식욕도 늘었다. 조금 살도 붙고, 예전 같으면 밥을 먹어도 배가 안 나왔는데 이제는 살짝 불룩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걸까. 오히려 더 건강해 보이고 예쁘다.






2. 주아


2013년생.

이제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는 시기다. 말을 걸면

‘What?’ 하는 표정. 다행히 아직 입 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았다.


둘째는 상대의 기분을 잘 살핀다. 배려심이 깊은 아이 같지만, 의외로 둔하다. 의도를 정확히 말해줘야만 알아듣는다. ‘대충 알겠지?’ 하면 백 퍼센트 모른다. 그래서 두 번씩은 같은 질문을 해야 하고, 그럴 땐 답답할 때가 많다. 자주 하는 말은 “Ah?”


언니를 싫어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보물 1호로 생각한다. 이건 아마 나만 아는 비밀일 것이다. 동생을 귀여워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살짝 질투도 한다. 악의는 없다. 솔직한 아이, 비밀이 없는 성격. 언니에게는 모든 걸 다 말해 버린다.


친구가 많다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착하지도, 헌신적이지도, 돈 많은 것도 아닌데. 심지어 언니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아이러니하다. 다만 물욕은 없고 저축을 잘한다. 벌써 60만 원을 모았다니, 곧 백만 원이 될지도 모른다.






3. 혁이


2023년생.

마음이 여리고 무서움이 많지만,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 힘이 세고, 용감하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슈퍼맨처럼 날아다니고, 빨리 뛰고, 점프하고 싶어 한다. 발차기도 멋지게 해보고 싶어서 흉내 낸다.


문제라면 흥이 너무 많다는 것.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가사를 몰라 슬프다. 게다가 음치다. 가끔은 인생 2회 차가 아닌가 싶을 만큼 어른스러운 순간이 있다. 하지만 아빠 앞에서는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엄마인 나는 그 순간을 알아채지만, 늘 억울하게도 나만 알 뿐이다.


애교는 넘쳐흐른다. 딸 둘을 키워봤지만, 혁이는 그들보다 더 애교가 많다. 애정 표현이 넘쳐서 때론 괴로울 지경이다. 칭찬받고 싶어서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 밖에서는 민망할 만큼 애교를 부리지만 결국 귀엽다. 집 밖에 나가는 건 싫어하면서도 막상 나가면 돌아가길 싫어한다. 말도 잘하고 표현도 잘한다. 셋 중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아이다.






엄마의 마음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아이들은 알아서 크고 자란 것 같다. 그런데도 신기한 건 내 성향이 고루 묻어 있다는 점이다. 역시 DNA는 어디 가지 않는다. 아이 탓하지 말자. 부모가 죄인이다.


요즘 큰애가 사고를 쳐 마음이 무겁지만, 고민한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손을 놓았다. 포기한 게 아니라, 아이를 바꾸려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기다리는 게 답임을 다시 떠올렸다.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다잡았던 마음이 흔들리지만, 그래도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나는 엄마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사고를 치든, 이 자리에서 기다려 줘야 하는 사람. 하지만 현실은 늘 먼저 달려가 버리는 엄마다.


둘째가 언니를 따라갈까 걱정되지만, 머리가 비상한 아이니 다른 길을 찾을 거라 믿는다. 아현이가 이번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깨달음을 얻었기를. 그저 조용히 그것만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주저앉지는 말아라.







-오늘의 교훈-


사춘기의 폭풍도 결국 지나간다.
그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등불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