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독후감 #18: 나의 마지막 사랑

인간독후감, 마지막 이야기

by ClaireH



내가 처음 본 그는 친절함이라고는 배어 있지 않은, 딱 봐도 차가운 남자였다.

그때의 나는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스무 살.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 진한 쌍꺼풀에 큰 눈, 높이 솟은 코와 두툼한 입술.

정말 “테토 남”처럼 차가운 이미지의 헤어 디자이너 내 사수였다.


말이 많지도 않았다.

간결하고 굵게 요점만 던졌다.

말을 예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손님에게도, 동료 직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가오를 잡거나 허세를 부리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진정성은 있으면서도 과대포장은 없는 사람 같았다. 모든 것에 호불호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렇게 멀리 있던 사람이 결국은 내 남편이 되어버렸다. 서로의 세월을 무시한 채,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그때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의 남편이었고,

나 또한 그 당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전혀 이성적인 관심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두 번이나 나를 울린 적도 있었다.

(사수 = 쌤이라고 부르던 시절이니, 앞으로도 과거형으로 그렇게 부르겠다.)

그에게 상처받았던 기억 때문에 쌤을 그다지 좋은 사람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진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는 새로운 회사로 옮기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하면서 쌤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삿날 밤, 나의 지인을 통해 그 동네에 쌤이 살고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회사 앞 상가에 쌤의 지인의 가게가 있었고, 쌤이 자주 그 지인의 가게에 물건을 배달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었다.


그가 늘 입에 달고 있던 인사말은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였다.

나는 그 인사를 형식적인 말로만 생각하고 그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전하지 않았다.

‘언제’는 늘 미뤄졌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쌤에게 다시 되물었다.


“시간 맞추기도 힘드시면서 왜 자꾸 물어보세요?”


“시간 맞추면 되지~”


“저는 일이 5시 넘어서 끝나요. 괜찮으세요?”


“물론이지!”


그렇게 2년 동안 형식적으로만 들었던 인사말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이젠 더 이상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되겠어!

그렇게 우린 드디어, 밥을 같이 먹게 된 것이다.




그날 나는 일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나갔다.

모자에 운동복, 늦은 시간, 헐레벌떡 뛰어나가는 내 모습과 달리 쌤의 뒷모습은 왠지 달라 보였다.


“쌤, 너무 꾸미신 거 아니에요?”


“나 원래 이렇게 다녀. 몰랐냐? “


“처음 보는데요? 근데 살 많이 빠지셨어요. 예전 그대 로시네요.”


“야, 네가 저번에 살쪘다고 해서 상처받고 살 뺀 거야.”


“에이, 저 때문에요?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아요.”


그렇게 대화는 어색함 없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였다.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사연,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던 일들, 오해와 편견이 풀리고

그가 차갑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우리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집도 가까워 급속도로 친해졌지만, 서로에게 조용히 천천히 스며들었던 것 같다.

중간에 내가 연락을 끊자고 선언한 적도 있었다.

이유는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정해지는 관계가 부담스러웠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짙어졌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두려움마저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또 감사하다.

그때 내 손을 놓지 않고 나와 함께 있어 주어서.

지금 이 하루하루가 행복이고 기쁨이다.


서로의 실패를 끌어안아줄 수 있었고, 믿고 의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하기 전, 그때의 나는 여전히 두려움 속에 머물러 있었고, 마음 한편엔 망설임이 있었다.

인연은 기다려 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지 마세요. 그 사람이 당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 글은 나의 “인간독후감”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새로운 이름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제 이 마지막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오늘의 교훈-


두 번의 실패 후,
나에겐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고 깨닫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