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케이팝 팬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트리플에스가 탄생한다. 트리플에스의 소속사, '모드하우스' 경영진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모드하우스의 정병기 대표도, 백광현 부대표도 아티스트 그 자체보다는 아티스트와 회사, 팬덤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를 자랑한다. 그리고 자사의 아티스트를 '팬 참여형 아이돌'로 정의한다. 이것이 우리가 트리플에스를 단순히 24인조 초대형 걸그룹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K팝 그룹이 성공하려면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결합이 필요하다
트리플에스의 팬주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바로 '오브젝트(objekt)'와 '꼬모(como)'다. 오브젝트는 온/오프라인상의 포토카드를 뜻한다. 그렇다고 오브젝트가 그저 포토카드에 그친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오브젝트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발행된 NFT를 발급받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트리플에스의 시스템 속 투표권이라 칭할 수 있는 꼬모이다.
흔히들 엔터사의 NFT라고 하면, 몇 년 전 잠깐 흥했던 온라인상의 굿즈를 떠올린다. 디지털 상품화되어 팬들에게 단발성으로 판매되고 마는 (누가 사는지도 모를) 상품 말이다. 하지만, 오브젝트는 타사의 NFT와는 달리, 시스템의 중심에 위치한다. 트리플에스의 팬들은 팬덤 플랫폼 서비스인 '코스모(COSMO)’, 또는 오프라인 판매처를 통해 오브젝트를 구매한다. 온라인에선 오브젝트 구매와 동시에, 오프라인에선 오브젝트 구매 후 코스모를 통해 스캔하면, 꼬모를 발급받는다. 그 후, 꼬모를 사용해 아티스트의 기획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트리플에스는 타이틀곡, 유닛 구성, 멤버들의 활동명 등을 결정할 때, 팬 투표 결과를 반영한다. 트리플에스의 이번 컴백을 보자. 컴백 3개월 전, 코스모를 통해 다음 앨범의 타이틀곡을 투표로 결정할 것이라는 공지가 올라온다. 이후, 팬들은 타이틀곡 후보들의 약 30초 분량의 데모 버전을 미리 듣고 여덟 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에 꼬모를 소모해 표를 던진다. 1차 투표가 끝나고, 최종 후보 두 곡을 두고 하루 간의 1대 1 투표가 시행된다. 최종적으로, 총소모된 97,535 꼬모 중 80,857 꼬모를 받은, 즉 팬들의 표를 더 많이 받은 'Girls Never Die'가 컴백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결정됐다.
일련의 팬 참여 과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앞서 언급된 블록체인 기술이다. 팬들이 꼬모를 사용해 아티스트의 기획에 참여하면, 꼬모는 자동 소각된다. 이는 블록체인 서버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모두가 확인할 수 있다.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투표 조작 논란을 블록체인의 기술력으로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또한, 꼬모의 확보에는 오브젝트 구매가 선행되기에 아티스트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팬들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여타 프로그램들이 시청자 참여의 개방성을 위해 투표의 문턱을 낮춘 반면, 트리플에스는 구매력이 보장되는 팬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자연스레 결과는 적극성을 띠는 코어 팬들에 의해 100% 결정되고, 설령 다른 의견을 가진 팬이더라도 아티스트 활동을 위해 결과를 쉬이 받아들일 수 있다.
코스모를 통한 아티스트의 기획은 기업이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일종의 D2C 방식에 가깝다. 팬 참여 과정에서 방송사와 같은 그 외의 이해관계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적어도 코스모 속에선 아티스트와 팬, 그리고 회사만 존재할 뿐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과정의 투명성과 직접 소통 방식으로 외부 개입의 차단이 보장되므로 팬들은 트리플에스의 팬주주의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다. 또한, 팬주주의의 대상은 철저히 팬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에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한다. 팬들은 아티스트를 함께 완성해 나가는 동반자의 위치를 소속사로부터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고, 이는 다시 팬들의 열성적 참여로 이어진다.
트리플에스는 또한 콘텐츠의 양적 방대함으로 팬덤의 정보 접근성에도 질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콘텐츠의 네이밍은 시간에 따라 달라졌지만, 매일 하나 이상의 영상 콘텐츠가 공개되는 규칙은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 현재 시점에선 매주 평일 21시 30분에는 'SIGNAL', 토요일엔 'SIGNAL WEEKLY', 일요일엔 'SecretBase'가 유튜브와 자체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다. 여기에 주 2회의 라이브 방송까지 추가되니 보통 며칠의 간격을 두고 자체 영상 콘텐츠가 공개되는 여타 아티스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콘텐츠 수를 자랑한다. 현재 트리플에스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는 2022년 4월 첫 영상이 올라온 이래 약 1,600개의 영상이 업로드되어 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첫 영상이 올라온 르세라핌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 비해 약 500개 많은 수치이며, 약 3년 전 데뷔한 있지의 공식 유튜브 계정과 비슷한 수치다. 그리고 트리플에스의 콘텐츠 공개 추세로 보았을 때, 이러한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모습을 더욱 자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티스트의 기획에 참여할 때 영상 콘텐츠를 통해 얻은 아티스트에 관한 정보를 적극 활용한다. 그리고 팬들이 아티스트에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더욱 나은 결과가 팬들에 의해 도출될 것이다.
물론 트리플에스의 팬주주의 시스템을 완벽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완전체 첫 활동인 정규 1집, 'ASSEMBLE24' 단체 티저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란이었다. 단체 티저 속 V자로 도열한 멤버들의 순서는 개인별 오브젝트 판매량 순위와 거의 동일했던 것이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단체 티저 속 멤버 순서에도 신중해야만 하는 이유는 트리플에스와 모드하우스의 중심에 팬주주의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투표 방식은 코어 팬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기에 좋지만, 오브젝트라는 유료 상품의 구매량을 통해 투표권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이른바 '금권정치'를 연상케 한다. 그렇기에 모드하우스가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회사 차원에서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더더욱 공정을 기해야 한다.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는 회사의 운영 방향은 수익성이 높은, 즉 인기가 높아 오브젝트 판매량이 높은 멤버들 중심으로 짜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24인조라는 초대형 아이돌 그룹을 인기 있는 멤버들은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인기가 없는 멤버들은 찬밥 신세가 되는 빈익빈 부익부 구조로 변형시켜 아티스트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저하할 것이다.
필자가 보았을 때, 현재 케이팝 시장의 화두는 '어떤 음악을 선보여야 하는가'보다도 '어떻게 팬들에게 보상하느냐'에 가까워져야 한다. 케이팝은 애초에 하나의 장르라고 보기보다는 일종의 산업이나 문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케이팝을 하나의 장르로 보면, 아프로비츠나 라틴 음악 같은 세계 음악 시장 속 카테고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케이팝을 산업이나 문화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팬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케이팝 성공의 기반엔 언제나 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트리플에스는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참신한 대안을 제시한다. 팬들의 니즈에 딱 맞는 굿즈, 다양한 영상 콘텐츠, 꾸준한 소통을 넘어 아티스트 기획의 문을 팬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말은 쉽지만, 회사 입장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팬주주의의 예시로 든 사례가 사실상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 방증이다.
어떤 아이돌은 왜 성공했고, 어떤 아이돌은 왜 실패했느냐를 분석할 때, 사회학자, 음악평론가, 경영학자 등의 의견도 그럴듯하지만, 방구석 케이팝 전문가 1, 2의 의견이 더욱 그럴듯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만큼 케이팝 팬들의 케이팝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트리플에스와 모드하우스의 도전은 이렇게 약 2-30년간 성장해 온 케이팝 팬덤을 믿기에 나올 수 있었다. 팬들은 충분히 뛰어나니 기회를 선물하면, 팬들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열과 성을 다할 것이고, 결국 아티스트와 팬덤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트리플에스, 더 나아가 모드하우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이 믿음이 케이팝 시장 전체로 퍼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 섞인 질문을 가진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