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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ug 13. 2023

중드 중국사 독학기 1

책과 드라마를 병행해서 가장 좋은 건, 중드를 본 후 중국사 책을 읽으면 활자들이 일어나서 연기를 한다는 점이다. 드라마 <봉신연의>를 보고는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책 속에서 드라마 출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듯 했다. 심지어 원작 소설은 시 형식이라 몇 년 전에 몇 장 읽다가 포기했을 정도로 읽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도 역시 드라마의 도움으로 다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도 ‘겨우’ 다 읽어낸 것이 아니라 365명이 신으로 봉해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 물론 ‘연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어낸 이야기이기에 역사라고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30%만 진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드라마와 책을 접하고 나니 중국이라는 나라가 주나라를 어떤 방식으로 추앙하는지 엿볼 수 있다. 우리가 고조선을 나라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도 단군 신화부터 배우니 중국의 주나라 건국 신화를 맛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봉신연의>로 중드 중국사를 시작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봉신연의> 다음에는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중이전기>와 <서시비사>를, 전국시대부터 진나라 건국까지는 <대진제국지굴기>를 중심으로 중국사를 공부했다. 이때 읽은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는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건국까지를 다루기 때문에 책의 속도에 맞춰 드라마를 선택했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오패나 전국칠웅 이외에도 많은 나라들이 있던 시기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지 꽤 많이 고민했다. 이번에는 공부가 목적이므로 춘추시대, 전국시대, 진나라 세 축으로 작품을 선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진시황, 월왕 구천을 제외하면 선택의 폭이 넓지도 않은데 고증이 잘 되지 못한 드라마도 있었다. 


춘추시대가 배경인 <중이전기>의 화려한 복장하며, <서시비사>의 결말은 우리가 아는 역사와 다르다. 그나마 4부까지 있는 <대진제국>시리즈가 고증이 잘 되어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공부가 어느 정도 된 상태라면 다큐드라마인 <풍운전국>도 요점 정리 차원에서 흥미롭다. 드라마에서 굵직한 연기를 했던 조연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하여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전국시대와 진나라에 대해서는 두 작품으로 갈증이 해소되지만 어쩔 수 없이 <중이전기>로 춘추시대의 전기를, <서시비사>로 후기를 공부하기로 했다. 오나라와 월나라에 대한 드라마는 적지 않으니 다른 선택지도 많지만 <중이전기>는 의상의 화려함이나 배우들의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선택지가 없어 이마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보았다. 진문공이나 제환공을 드라마에서 꼭 보고 싶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마저도 우리나라에 비한다면 매우 풍족해 보였다. 우리나라의 삼한이나 가야의 이야기, 혹은 사로국 이전의 여섯 부족의 이야기, 고구려 이전의 다섯 부족 이야기 등이 극화된 경우가 얼마나 있던가? 가야의 수로왕 정도만 떠오른다. 중드로 중국사를 공부하면서 오래된 중국의 역사만큼이나 많이 생산된 이야기들이 인상깊었다. 


한나라는 <초한전기>로 시작했다. 중국사를 공부하기 몇 해 전에 [삼국지]를 읽으면서 봤던 <신삼국지>의 배우들을 다시 만나 더 반가웠다. 특히 항우 역의 허룬둥(하윤동)은 여포일 때와 마찬가지로 ‘장르가 멜로’인 배우였다. 여포일 때도 편들게 만들더니 항우일 때도 자꾸 편을 들게 한다. 연기자의 소화력이란 캐릭터로 막힌 선입견도 다 뚫어낸다. 모두가 알다시피 초한의 전투는 유방이 승리하고, 한나라는 중간에 왕망에 의해 맥이 끊기기도 하지만 광무제로 인해 다시 이어지니 400년의 역사이다. 저만 잘났다고 내세우는 사람보다는 주변 사람의 말을 포용하는 유방의 리더십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지만,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항우가 조금만 겸손했더라면 어땠을까?’, ‘항우가 너무 어릴 때부터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산 건 아닐까?’ 하는 전지적 항우 시점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봤다. 그건 허룬동(하윤동)이라는 배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훗날 토사구팽하는 유방의 모습에 실망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 만나게 된 초한의 이야기는 그동안 ‘위대한 한고조 유방’이라는 프레임에 반대하며 보았다. 정사에 크게 위배가 되지 않는다면 다양한 해석을 가지는 것도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꽤 많다. 중국의 대표적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한무제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는 물론, <모의천하> 같은 한나라 후기 후궁의 암투를 다룬 드라마도 많았다. 마보융의 소설 원작인 <풍기농서>와 <삼국기밀 한헌제전>은 한나라 말기와 삼국시대를 다룬다. 그래도 공부하기엔 <신삼국지>가 좋았고 오래된 드라마답지 않게 전투씬이나 배우들의 연기 퀄리티가 높아 100편을 보는 내내 몰입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드라마를 보며 조조의 웃음 흉내내기 배틀을 펼치기도 했고,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이 나오는 다른 드라마는 믿고 보는 드라마가 되었다.  다만, 초선이 <초한전기>의 우희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점을 비롯하여 여성 캐릭터가 소설만큼도 발휘가 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손부인 역할에 린신루(임심여)를 캐스팅하고도 단역처럼 쓰다니 인력 낭비가 아닌가?


위진남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도 적지 않은데 아무래도 한 사람의 일생보다 짧은 역사를 지닌 나라들이 우후죽순 나오는 시대라 보니 인상 깊은 인물이 없어 상상을 많이 보탠 경우가 많다. 이 시기 드라마를 보면서 우문가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북주의 우문 가문은 <특공황비초교전>을 비롯해서 대체로 변태적이거나 포악하게 그려지는데 <난릉왕>이나 <독고천하>에서는 멋있게 나온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고, 우문 가문은 결국 패자이므로 좋게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왕조의 마지막 왕들이 어떠했는지 떠올려보라. 이때, 어느 정도 판단을 유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들을 직접 겪지 않았으니 말이다.


얼마 전 읽은 [남한산성]을 읽은 이야기를 하자면, 평소 인조와 선조를 조선 최고의 못난이 왕들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인조가 심히 멀쩡해 보였다. 멋있진 않았지만 정신이 그래도 맑아 보였다. 이전까지 내가 읽은 인조는 병적으로 불안하고 짜증이 심했는데 낯설었다. 어쩌면 그 못난 모습이 삼전도 사건을 겪으며 성격이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는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병자호란 때문에 홍타이지나 도르곤 등의 청나라 황족들을 우리 어릴 때 북한 사람들을 붉은 괴수처럼 여기듯 오랑캐로 얕잡아 봤는데 중드나 역사책을 보니 그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었다. 역사는 후대가 평가하는 것이지만 그 평가 역시 시대의 흐름을 타기에 유동적이다. 공부를 할수록 그 흐름에 나를 맡기기 보다는 내 나름의 평가를 내리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일단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많은 중국의 왕과 인물들이 공부를 통해 새 이미지를 얻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측천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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