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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ug 25. 2023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오빠들

1990년대 중화권 배우들


*이번 글에서는 외국어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불러본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절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향냄새를 좋아해서 누가 절에 같이 가자고 하면 몸도 마음도 동하는데, 단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 바로 절 입구에 통과해야 하는 천왕문에 있던 사천왕이다. 어릴 때부터 절에 갈 때면 지은 죄가 많은가 무시무시한 사천왕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고 두려움이 생겼다. 눈을 질끔 감고 지나가면서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 다짐 덕분인가 어느 날 하늘이 세상에 잘생긴 사천왕을 내려주더라. 물론 그 사천왕과는 다른 의미지만.


1990년대 인기 있던 홍콩 배우들을 우리는 ‘4대 천왕’이라고 불렀다. 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여명이 그들이다. 미스홍콩선발대회에 한창 인기가 오르던 네 명의 가수가 모인 것을 보고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상당했다. 이들보다 앞서 주윤발과 장국영, 주성치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었고, 양조위는 살짝 뒤에 인기를 끈 경우이다. 양조위는 왕가위라는 감독을 만나면서부터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경우라 나이는 앞의 배우들과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것은 그보다 아랫세대인 금성무와 시기가 비슷하다. 그 양조위를 나는 비디오를 보며 미리부터 사랑했다는 게 그저 자랑스러울 뿐이다. 사대천왕과 주윤발, 장국영, 주성치, 양조위, 금성무 뿐만 아니라 더 멋진 중화권 오빠들은 자꾸만 등장해 1990년대는 그야말로 홍콩배우 전성시대였다.


듣기로 요즘 중고등학생들도 중화권 청춘 드라마를 많이 본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멋진 오빠들이 작품마다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어릴 때도 적진 않았지만 홍콩, 대만 오빠들이라 수적 한계가 있었는데 요즘엔 대륙의 힘이 발휘 중이다. 암, 사람 수에는 중국을 이기긴 어렵지! 중화권 배우나 일본 배우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때의 나나 지금의 청소년들이나 비슷할 것이다. 외모나 문화적으로 닮은 나라들이기에 일단은 익숙하고, 거기에 언어를 비롯한 낯섬이 신비로운 마음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닐까? 익숙함과 낯섬의 적절한 배합은 사랑에 빠지는 절대 조건이니까! 그중에서도 나는 중국어의 낯섬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중드 특유의 소년 영웅 서사가 주인공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어 중화권 오빠들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저 오빠, 뭐라고 하는 거야? 목소리 왜 이렇게 좋아? 저 목소리 익숙한데 저거 진짜 오빠 목소리일까? 저 발음, 광둥어야 북경어야? 아이야~


4대천왕 외에도 소유붕, 임지령, 오기륭, 사정봉이 있었다.(금성무, 소유붕, 임지령, 오기륭을 일컬어 ‘대만 4대천왕’이라 부르기도 했다.) 동글동글한 알밤같은 소유붕, 눈웃음이 매력적이고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임지령, 훤칠한 체격의 오기륭, 우수에 찬 눈빛의 사정봉, 그리고 이들과 달리 길쭉길쭉하고 날카로운 매력을 지닌 금성무, [동방불패]의 오빠같던 언니 임청하 등 멋진 오빠들(임청하는 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내 취향이 아니라서 잊고 있었는데 액션배우 이연걸의 인기도 대단했다! 성룡이나 이소룡까지 올라가진 말자.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 차이는 있지만 모두 어린 한 시절 내 정서를 지배했던 중화권 배우들이다. 그래서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최근 작품에서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드라마의 퀄리티 보다도 그 사람이 불러오는 향수 때문에 그 작품을 끝까지 보게 된다. 여전히 활동해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활동하라는 응원도 함께 하면서!


이 오빠들 중 가장 내 취향이 아닌 사람을 고르라면 오기륭이다. 그 오기륭을 2017년에 본 <촉산전기>에서 보았는데 누가 보면 왕년에 골수팬이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보자마자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나왔다. 시절의 향수가 개인의 호를 이겨버린 순간이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양조위, 유덕화, 주윤발, 여명을 제외하고는 오기륭이 유일하게 최신 드라마에서 본 오빠이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오기륭을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원래는 자오리잉(조려영)을 보려고 시작한 드라마이고 오기륭이 나오는 줄도 모르는 채 TV 앞에 앉았다가 오기륭이 등장하자마자 놀라 원래 목적을 잊고 말았다. 내 눈엔 진위정이 남주가 아니라 오기륭이 남주로 보여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연기한 녹포존자의 시점에서 드라마를 보았다. 물론 <촉산전기>에서 녹포존자는 충분히 마음이 가는 캐릭터였다. 악인이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오기륭이  연기한 덕분에 한층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그의 건재함에 괜히 뭉클해지기까지 했는데 나만 몰랐을 뿐 그는 <보보경심>을 통해 과거 큰 인기를 얻었고, 상대역이었던 류시시와 결혼까지 했을 정도로 대만 4대천왕 중에는 가장 오랫동안 활약을 하고 있었다.(<보보경심>은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까지 했지만 나는 당시 중드 공백기로 중드도 한드도 보지 못해서 알지 못했다.) 인기란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그 인기의 끈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오기륭이 너무 대단해보였다. 그 과정이 어찌 수월했을까? 그러니 건재함과 동시에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세월의 흔적은 눈감아 주기로 한다. 아빠로 나와도 나에게 오빠는 오빠니까.


오기륭을 <촉산전기>에서 만난 이후 그 시절 나의 중화권 오빠들이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출연 드라마를 찾아보게 되었다. 영화 《러브 레터》의 대사처럼 “오겡끼 데스까? 와타시와 겡끼데쓰!”라는 인사를 하고 싶달까? 부디 나만 몰랐을 뿐 기륭 오빠처럼 왕성한 활동 중이길 기대하면서 찾아보니, 그 오빠들 대체로 잘 지내고 있더라. 한때일지라도 하늘 끝 모르고 올라가던 인기가 허망한 연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단 오기륭은 앞서 말했듯 <보보경심> 시리즈로 인기도 얻고 결혼도 했으며, <촉산전기>시리즈를 출연만 한 게 아니라 제작까지 했다. 소유붕의 경우 최근엔 감독으로서 더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가 감독한 《용의자 x의 현신》을 봤는데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원작을 잘 살린 긴장감이 좋았다. 임지령의 경우 드라마가 아닌 예능 등에서 근황을 알리고 있는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오빠 중 제일 어렸던 오빠라 드라마 활동을 가장 오래 할 줄 알았는데 아쉽다. 배우는 연기로 만날 때가 가장 반갑다. 올해 계획 중 하나가 소설 [천룡팔부]를 읽는 것인데 겸사겸사 임지령이 주연한 <천룡팔부 2003>이나 다시 봐야겠다. 사정봉은 내가 최근에 본 것은 2007년 작품인 <완화세검록>인데 우수에 찬 눈빛은 여전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주연 배우로서 활약 중이지만 인기는 크게 얻지 못하는 듯 하다. 스캔들의 여파인지 시대가 저문 것인지는 모르겠다.


장국영 오빠는 한창 때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나는 그를 사랑한 적은 없지만 내내 그를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떠난 후 사랑한 적 없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든다. 나도 사랑할 걸...이런 마음 말이다.) 주윤발, 양조위는 그때보다 더 굳건한 입지를 얻게 되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건재하다. 영화 <무간도>에서 양조위, 유덕화, 여명을 모두 만났을 때에는 뭉클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좋은 영화라는 사실보다 세 배우가 모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어린 시절 받은 과자종합세트보다 더 만족스러운 선물이었다.


세월은 흘렀고 누군가는 그때의 영광이 지금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쇠락하기도 했다. 당연히 소녀들에겐 쇠락한 오빠보단 건재한 오빠가 낫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의 오빠 중 한 사람일 배우들이여, 소녀들을 위해 부디 많은 작품을 남겨주고 오래오래 연기하길 바란다. 혹시 아는가? 내가 20년 후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남동생들’이라고 한 꼭지의 글이라도 쓸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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