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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ug 11. 2023

중국사를 중드로 시작했어요.

취미를 오래 향유하는 방법


 드라마도 장르가 많아 사람마다 선호하는 종류가 제각각인데 나는 중드 중에서도 고장극 취향인 지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 사극이라 불리는 종류의 고장극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협물을 좋아했지, 우리나라에서 정통사극이라 불리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대하드라마는 즐겨보지 않았다. 내 기준에 너무 칙칙하고 무거웠다. <태조 왕건>이나 <근초고왕>같은 드라마 말이다. 보다 보면 빠져든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지만, 내겐 <다모> 정도의 무게가 적당한 듯 하다.(<홍천기>도 있고 <옷소매 붉은 끝동>도 있는데 언젯적 <다모>냐? 중드만 봐서 한국 드라마를 잘 모른다.) 무협물이나, 선협물, 가상 국가 배경의 궁중암투물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다보면 고증에도 신경을 써야 해서 단순히 즐기는 것 이상의 지적 활동이 필요했기에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난, 중드를 현실도피의 도구로 여기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 모임에서 [논어]를 읽게 되었다. [논어]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논어를 다룬 전문 서적들과 더불어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도 읽었다. 장장 11권에 달하는 책이었다. 몰입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때 내가 느낀 희열과 성취감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활동을 본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나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질리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했지만, 정작 나는 무척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더구나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법, 공부를 하면서 읽은 [논어]는 이전까지 내가 명언집 정도로 치부했던 책이 아니었다. 세상이 넓어지는 경험을 우리는 여행과 공부를 통해 얻게 되는데 이 때 나는 공부를 통해 좁은 견문이 확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공자투어'까지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공자투어'는 할 수 없지만 대신, 중드로 시간 여행을 갈 수 있으니 그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기왕 붙인 공부 재미, 중국사를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그렇게 중드를 체계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한 번 파면 끝장을 보는 성질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상나라 말기부터 주나라 건국의 이야기를 다룬 <봉신연의>를 시작으로 중드 고장극들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공부가 목적이므로 정사에 기반을 둔 작품들을 선택했다. 드라마를 보면서 중국사 책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책으로만 중국사를 공부하면 자칫 지루함에 포기할 수 있고, 중드로만 중국사를 공부하면 왜곡된 역사를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하지만 두 가지를 함께 공부하면 책의 지루함은 드라마가 채워주고, 드라마의 불균형은 책이 잡아준다. 물론 같은 시기를 다루었다고 역사란 기록하는 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므로 책도 드라마도 한 가지만 보기 보다는 여러 관점을 접해보는 것이 좋다. 재미를 좇은 공부였지만 허투루 하지는 않았다. 드라마와 역사책을 병행하며 때로는 한 시대에 여러 편의 책과 작품을 섭렵한 경우도 적지 않아, 3년의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청나라까지 마칠 수 있었다. 각각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지면을 통해 말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책에서는 그 과정만 담아보려 한다.


이제 나에게 중드는 복잡한 현실을 도피하는 통로만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재미가 가장 중요하지만, 귀로는 중국어 흘려듣기를 하고 머리로는 중국의 역사를 짚어나가는 전방위 장르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겠지만 내가 중드를 향유하는 건, 그것의 좋은 점을 자꾸만 발굴하여 오래도록 내가 즐기도록 스스로 동력을 만드는 방식이다. 배구 키즈였던 때, 고려 증권이 해체되고 한참을 방황하다 현대 스카이워크 팀을 응원하면서도 그랬다. 배구를 오래 좋아하고 싶어서 직접 경기장에 가서 관람하는 것은 물론, 오빠 부대(동생 부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노릇도 해 봤다. 어릴 때 TV로만 혼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팬이 되었다. 대전으로 팬미팅도 다녀오고, 사인회도 찾아가서 결국 몇몇 선수와는 인사를 나눌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데 다시 배구는 내 생활에서 멀어졌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경기장도 찾아가고 했지만 이동이 잦은 취미는 현실적으로 방해가 많았다. 차라리 배구를 중계방송을 챙겨보면서 공부하는 방식으로 덕질을 했더라면 중드의 자리에 배구가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교사 배구 경기에 심판 한 자리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드는 좀 다른 방식으로 향유하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중드 커뮤니티에 들어가거나 팬카페에 가입을 했겠지만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느라 지칠 게 뻔하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이것저것 중드를 통해 궁리를 해 본다. 지금 쓰는 이 글도 그중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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