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Sep 11. 2023

마음에 훠젠화(곽건화)를 들여놓다.

훠젠화 (霍建华 Wallce Huo1979, 대만)


1993년 이후 중화권 배우라곤 량차오웨이(양조위) 외에는 더 돌아보지 않았다. 중화권이라는 조건을 짓지 않아도 내게 원픽 배우는 늘 량차오웨이(양조위)였다. 처음 그를 사랑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가 차려놓은 작품들이 얼마나 찬란한지를 보라.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전성기라 부를 수 있다. 그러니 그를 대체할 사람이 내 눈에 있었겠는가? 내게는 ‘양조위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량차오웨이는 이제는 영화배우이다. 드라마에서는 더 이상 그를 보기 어렵다. 


량차오웨이를 밀어낼 생각은 없었지만 요 몇 년 간 중국드라마를 날마다 보니 대륙의 힘이 느껴진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앓는 일이 생겼다. 내가 이렇게 쉬운 사람이었나? 그 앓이는 때로는 깊었고 대개는 일주일도 안 갔다. 처음엔 무슨 열녀마냥 도리질을 치며 ‘양조위부심’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은 포기했다. 량차오웨이(양조위)는 그냥 머리 꼭대기의 별로 남겨두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앓기로 했다. 그 첫 배우가 훠젠화(곽건화)였고, 귀뚜라미 보일러 마냥 내 마음에 들여 놓았다.  


훠젠화(곽건화)는 <황제의 딸>로 유명해진 린신루(임심여)의 배우자이자 그녀와 함께 찍은 <경세황비> 등으로 인기를 얻은 대만의 배우이다. 량차오웨이(양조위) 이후 앓는 중드 배우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한 살이 적다. 개월수로라도 셈하고 싶었지만 12월 26일생이라 그것도 의미 없다. 나랑 1년 꽉 차게 차이가 나는 동생이다. 아, 이제 더 이상 브라운관에 내가 앓을 수 있는 오빠는 없구나! 


훠젠화는 대만에서 가수로 처음 데뷔를 했으며 내가 중드 공백기를 가졌을 때 인기를 끈 배우라 이전의 작품은 본 적이 없어 처음 본 드라마가 <화천골>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풋풋한 시절에 찍은 드라마들보다 더 큰 인기를 끌어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으니 내가 때를 잘못 만난 건 아니다. <화천골>을 보고 내가 얼마나 많이 검색을 했겠는가? 검색 엔진이 찾아준 청년 훠젠화(곽건화)는 분명 곱고 순수했지만  중년의 훠젠화(곽건화)가 보여주는 연기가 더 좋았다. 그의 오랜 팬들과 달리 젊은 훠젠화(곽건화)를 잘 모르지만 내가 만난 훠젠화(곽건화)의 모습이 내 눈엔 더 멋있다. 여전한 속눈썹과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긴 얼굴, 마음을 숨기는 표정 연기 등에서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래서 굳이 좋아한다고 청년 시절의 작품까지 찾아볼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환상을 품는 것보단 내가 경험한 것에 애정을 갖는 게 더 편하다.


<화천골>에서 그가 맡은 백자화라는 인물은 성격이 답답해서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하며 초반에는 내내 불만을 가진 캐릭터였다. 지금도 캐릭터 자체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애써 감추려는 고통을 표현하는 훠젠화의 연기가 맘에 들었다. 분명 양조위에게서 느낀 연기 장인의 느낌은 아니었는데, 묘하게, 끌렸다. 핏대를 올리며 화천골을 밀어내는 백자화의 모습이 미련해 보이면서도 순수해 보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본 순수함에 훠젠화(곽건화)라는 사람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백자화가 아니라 훠젠화를 좋아한 거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고 나니 백자화 역은 기존에 그가 맡은 다른 역할들과는 결이 다른 역할이었다. 주로 속내를 잘 숨기는 차가운 남자, 자기 속도 남의 속도 잘 모르는 순진한 남자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고운 외모 덕인지 주로 계급이 높은 역할을 했다. <여의전>과 <표문>에서는 왠만한 미남이 아니고선 소화하기 어렵다는 변발을 하고도 반듯한 이목구비를 뽐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차도남’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연기에서도 감정을 폭발하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화천골>의 백자화는 표현만 차가울 뿐 뜨거운 열정이 있으며 그것을 숨기느라 무척 애를 쓰는 인물이다. 그러니 긴 속눈썹에 뽀얀 피부를 과시하며 내내 도도한 척 하다가 마지막에 절망으로 무너지는 모습에 어찌 반하지 않고 버티겠는가! 마지막회에서는 있는 눈물 없는 눈물 다 짜내어 가며 몇 번을 돌려봤고 그때 내 눈동자는 절규하듯 우는 훠젠화(곽건화)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봤는데 또다시 울고 말았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어떤 면에선 혐오스럽지만, 겉보다 속이 따뜻한 경우라면 다를 수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셈만 하는 사람에게는 내내 실망할 일밖에 없지만 겉은 무덤덤해도 속으로 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내내 감동을 받을 테니까. 백자화가 처음 등장할 때의 핏기없이 차가운 사람으로 일관되었다면, 훠젠화(곽건화)가 깔끔한 외모의 모습만 보여주었다면 나는 백자화도 훠젠화도 앓지 않았을 것이다. 화천골에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 일상의 모습에선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모습이 발견될 때마다 훠젠화에게 자꾸만 반하게 된다.  


다음 작품으로 <금옥량연>을 보게 먼저 되었다. 무겁고 울적한 작품을 봤으니 좀 가벼운 것을 보고 싶었다. 백자화의 얼굴로 코믹 연기를 한다?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량차오웨이(양조위)의 속눈썹과는 좀 다르지만 훠젠화(곽건화) 역시 속눈썹이 무척 길고 풍성하다. 눈빛은 양조위가 우위지만 속눈썹은 훠젠화(곽건화)가 우위이다.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우수라면, 훠젠화(곽건화)는 순수라고 할 수 있다. <경세황비>를 봤더라면 이 속눈썹에 빠졌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금옥량연>에서 속눈썹은 그저 거들 뿐 의외로 코믹한 표정 연기가 더 매력적이었다. 극중 금원보는 깨방정을 떨면서 왕자병도 심한 캐릭터이다. 이 사람이 <화천골>의 백자화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양극단은 통한다고 했던가 백자화만큼이나 금원보 역할도 잘 어울렸다. 이런 매력이 있구나 또 한 번 재발견을 할 수 있어서 <금옥량연>에 아주 만족했다. 


팬들 사이에선 낯가림이 매우 심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교적인 아내를 만나 변모하고 있다는 풍문이다. 그런 것으로 보아 그는 낯가림은 있지만 친한 사람들에게는 <금옥량연> 속 금원보의 모습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 모습을 보고 살 수 있는 린신루(임심여)가 부러운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커플이다. 아마 나는 이런 멀쩡한 얼굴로 대놓고 자기애에 빠져 능청을 떠는 역할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다음에 소개할 서정계 역시 비슷한 역할에서 앓기 시작했으니까. 


훠젠화(곽건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타래료, 청폐안>에서의 모습을 최고로 꼽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에서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은 사진만 봐도 설렐 정도라 다른 사람에게 훠젠화를 소개할 때 이때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 멋있지?”라고 묻는다. 제아무리 멋있는 사람이라도 허연 옷에 반 머리 묶고 얼굴까지 허연 모습을 보여주거나, 변발의 왕을 보여주면 상대방에게 공감을 얻기가 어려운데 <타래료, 청폐안> 속 스틸컷을 보여주면 그나마 공감을 얻는다. 내가 주변에 중드를 널리 퍼뜨리긴 했는데 아직 취향이 딱 맞는 사람을 못 만나 아쉽다. 왜 훠젠화의 매력을 모르는 거야? 답답하다. 개인적으로는 량차오웨이도 그렇고 훠젠화도 그렇고 작품 속 모습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매력에 더 빠지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더 사랑하게 되나니 이젠 알 만큼 알았으니 사랑만 하면 된다. 량차오웨이를 30년째 앓고 있다면 훠젠화는 25년만 부족할 뿐 두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죽을 때까지 갈 것 같다. 이 두 ‘사람’이 좋다. 

이전 12화 30년산 梁哥哥 앓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