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를 공부하기에 좋은 중드 1
<봉신연의>에서 <수당연의>까지
주나라 건국부터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드라마 <봉신연의>를 보았다. 판타지 요소가 많고 여러 번 게임화되어 이미 유명한 작품이지만, 게임도 안 하고 판타지도 싫어하는 내겐 똠양꿍만큼이나 낯선 작품이다. 뭔지 알아나보자는 마음으로 오로지 공부를 위해서 시작했는데, 보다 보니 재미는 둘째치고 대단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포기했던 원작 소설 7권과 함께 주나라 건국 신화를 맛보았다. 그렇다, <봉신연의>는 신화다. 주나라 건국에 이바지한 사람들을 ‘신으로 봉하는 이야기’라 앎보다는 재미를 주는 드라마이다. 물론 그 재미를 우리는 앎으로 달달 외고 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도 단군 신화를 아는 것부터 한국사를 시작하지 않던가? 그런 면에서 중국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이다.
춘추전국시대는 공원국 작가의 [춘추전국이야기]를 읽으며 드라마를 봤다. 춘추시대 전기를 다룬 드라마로는 <중이전기>를 보았고, 후기를 다룬 드라마는 <서시비사>를 보았다. <중이전기>는 우리가 아는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아니라 진(晉)나라 군주였던 진문공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인데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다지만 의상부터 너무 고증이 엉망이다. 당나라로 착각할 만큼 화려한 의상이 춘추시대에 가능했을 것인가? 그래도 누군가의 성장 이야기는 기본 골격은 갖춰진 이야기라 끝까지 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 경우엔 특히 주인공인 진문공 외에도 춘추오패 중 진목공과 제환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의미있다. 춘추전국시대 드라마도 대부분은 전국시대에 치우쳐 춘추시대 전기는 특히 귀하므로 아쉬움은 제껴두고 아끼는 마음으로 보았다. <서시비사>는 중국최고미녀로 손꼽히는 서시를 이용해 월나라가 오나라를 무너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서시 역의 우징징(오정정)이 너무 아름다워 류위페이(유역비)가 소용녀이듯 우징징이 곧 서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비록 월왕구천이 오왕부차를 이겼지만 여자를 이용하고 토사구팽을 일삼는 행태가 참 못나 보였다. 어릴 때 월왕구천에 대한 우상처럼 받드는 얘기만 보고들었던 터라 <서시비사>를 보며 이런 느낌을 갖게 된 게 낯설었지만 재해석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반갑다. 승자의 역사는 아무래도 지루하다. 전국칠웅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드라마 <풍운전국>이 공부하기에는 간단하고 좋은데 길게 보려면 <대진제국> 시리즈가 좋다.
<대진제국>시리즈는 대작으로 총 4개의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이 드라마를 보면 춘추전국시대부터 진나라 건국까지를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다. 고증이 잘 된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고 있으며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 드라마이다. 나는 3부에 해당하는 <대진제국지굴기>를 봤는데 이 드라마를 보기에 앞서 <미월전>과 <호란전>을 봐서 소양왕 전후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미월전>의 미월은 <대진제국지굴기>에서 중국 최초의 태후인 선태후가 되어 있었고, 당시 조나라의 상황은 <호란전>에서 보고 진나라의 상황은 <대진제국>에서 볼 수 있었다. 전국시대 칠웅의 힘겨루기를 빼어난 연기와 고증으로 맛보기에 더없이 좋은 드라마이다. 4부 <대진부>로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며 <대진제국> 시리즈는 끝이 난다.
한나라는 <초한전기>로 시작했다. 다큐드라마 <초한>으로 짧게 봐도 좋지만 <초한전기>의 배우들과 제작진에 대한 믿음이 있어 나는 긴 호흡으로 즐겼다. 자꾸만 항우에게 마음이 가는 점만 빼면 공부에도 도움이 되었다. <미인심계>는 유방 사후 한문제 등극까지의 한나라 상황을 훗날 두태후가 되는 두의방을 이중스파이로 그려 허구적이지만, 당시 한문제가 등극하기까지 한나라의 상황을 느끼기엔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이다. 한무제는 중국을 통틀어 손꼽히는 위대한 황제로 그에 관한 드라마도 많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위황후전>이었다. 왠지 <한무제>는 미화가 심할 것 같았다. 이와나미문고 [한무제]와 이중톈중국사 [한무의 제국]을 함께 읽으며 봤더니 한무제와 위황후 사이에서 제법 균형을 잡으며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지루해져 재미로 보는 것은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한나라 말기는 궁중암투극인 <모의천하>로 오래전에 보았는데 전한 말기 한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을 극단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너무 자극적이었다. 나라가 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만 그것을 다 여자 탓으로 돌리는 시각은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모의천하>는 오래 전 드라마이기에 나라가 망하는 것을 요사스러운 여인들만의 탓인 양 다뤄지는 게 불편했다. 자극성으로 치면 100점 만점에 90점은 되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것은 자극성 때문이 아니라 한성제의 폐후였던 조비연 역할의 통리아(동려아)가 역할 이름처럼 제비처럼 가볍게 춤을 춘 장면 때문이었다. 유난히 자극성이 당기는 날이 있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중국 4대 미녀인 왕소군 일화도 나오고 전한 말기 과정을 한원제의 황후이자 한성제의 모후이고 왕망의 고모이기도 했던 왕정군의 입장에서 본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조금만 덜 자극적으로 그렸더라도 충분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신삼국지>를 통해 한나라가 망하고 위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을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 <초한전기>와 <신삼국지>는 제작사가 같아서 배우들도 많이 겹치고 고증도 잘 된 드라마이다. 2010년의 드라마인데 전쟁씬은 지금 봐도 잘 만들어졌다. 몇 년 전 <사마의> 시리즈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었는데 칼국수집 직원분들도 옹기종기 모여 <사마의>를 보고 있었다. 보통 식당에서 중드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만큼 <사마의>는 국내에서도 꽤 많은 인기를 얻었다. 주연배우의 스캔들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작품으로 얻은 인기를 제발 작품 밖에서 써 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드라마 자체는 평이 좋고 <신삼국지>에서 유비 역을 맡은 우허웨이(우화위)가 <사마의>에선 조조 역을 맡은 점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드라마는 대체로 역사 속 인물만 겨우 빌려오는 정도가 대부분이라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분위기를 엿보는 데에 만족했다. <금수미앙>이나 <봉수황>, <특공황비초교전> 등이 그렇다. 수나라 건국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수문제와 독고가라 부부의 관계를 미리 공부하고 보면 좋다. <독고황후>와 <독고천하>는 제목에서 알다시피 수문제 양견보다는 독고가문이 더 중심이다. 수문제인 양견은 독고가문의 힘을 업고 황위에 오른 터였으므로 수나라 건국에 있어 독고황후의 힘은 수문제에 못지 않다. 더구나 처음 결혼할 때 약속대로 수문제는 평생 첩을 두지 않고 독고황후만 아내로 삼았으며 두 사람이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하니 현대 어느 나라의 대통령부부가 그럴 수가 있을까 싶어 더 관심이 가는 커플이다. 하지만 훌륭한 부모 아래에서도 남들은 모르는 이유로 개차반 아들이 태어날 수 있으니 수양제가 바로 그러하다. 그런 수양제의 모습을 비롯하여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되는 과정은 <수당연의>를 통해 건국신화로 맛보았다. 제목에 ‘연의’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것이 소설이라는 뜻이므로 <봉신연의>나 <삼국지연의>처럼 재밌게 보면 된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수양제]를 읽으며 정리했는데 수양제는 머리가 나쁘거나 나태해서 나라를 망하게 했다기 보다는 인정의 욕구가 불러온 조급증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았다. 훌륭한 부모도 양육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