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를 위해 구분을 지었지만 고장극 안에서 여러 장르로 나누는 것이 사실 큰 의미는 없다. 고장극에서는 그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데에 중심을 뒀는가와 창작에 더 큰 의미를 뒀는가만 가지고 따져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다음 내가 어떤 목적으로 드라마를 볼 것인가를 따져보고 앎을 위해 본다면 전자에 속하는 작품들을 보면 되고,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 깨기에 도전하겠다 싶으면 배우 중심으로 보면 된다.
문제는 볼 드라마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대륙의 힘인지 정말 많은 드라마들이 다양한 채널로 방영이 되고 있다. 그 드라마를 보려면 수고도 필요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나는 유플러스에서 영화월정액과 티빙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 채널이다보니 아이치이나 위티비보다는 화제가 되고 한참 지나야 시청할 수 있다. 더구나 어떤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만, 어떤 드라마는 왓챠 등 특정 채널로만 볼 수 있어 보고 싶은 드라마를 맘껏 보기 위해서는 채널차이나나 중화TV 등에서 본방을 사수하거나 다양한 채널의 월정액을 모두 가입해야 한다. 덕심이 모자란 탓인지 월정액을 모두 가입할 정도로 노력하지는 않았다. 퇴근 후에 짬짬이 보는 걸로는 최신 드라마 모두는커녕 보고 싶은 드라마 하나도 간신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드라마가 생겼는데 그러자고 새로운 채널에 또다시 월정액을 가입해야한다면, 차선책을 먼저 알아본다. 채널을 갈아타거나 하는 등의 복잡한 동선은 손가락으로도 하고 싶지 않다. 머리를 단순하게 즐겁게 해주기 위해 보는 중드인데 그런 노동력을 동원하고 싶진 않다. 그럴 땐 그냥 원작 소설을 찾아 읽는다던가, 배우가 출연한 다른 작품으로 입덕 워밍업을 한다. 최근 <연화루>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이치이에 가입을 하긴 했는데 5화까진 호탕하게 보여주더니 6화부턴 vip 요금제를 가입해야한대서 고민하다가 이 기회에 소설을 먼저 읽자 마음 먹었다. 5화까지만 본 것으로도 내 상상력은 책장 사이로 이연화 선생이 날아다니고 소사검과 문경검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떨어졌다 하였으니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세 권을 다 읽고 나면 채널차이나에서 방영을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직도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현재는 아무래도 vip 요금제에 가입해야하는 건가 고민된다. 소설을 읽고 나니 더 보고 싶어지는 걸 예상 못했다. 하지만 아마 <옥골요>와 <소년가행>을 보면서 기다릴 것이다.
어차피 선택이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없고, 모든 책을 읽을 수 없듯, 모든 중드를 볼 수는 없다. 고작 이 정도의 중드를 보고 이렇게 아는 척을 한단 말이야?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읽은 책 만큼 책에 대해 말하고, 본 중드 만큼만 중드를 말할 수 있다. 겨우 이 정도의 중드를 본 사람이 앞으로도 그만큼씩 더 볼 사람이, 자기만의 중드를 즐기는 방법을 쓴 것일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수십 편의 중드가 새로 방영되었다. 기분 탓인지 방영 속도가 더 빨라지는 듯 하다. 이 글이 책이 되는 때에는 내가 여기서 거론한 많은 드라마들이 이미 화제의 중심에서 많이 멀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본 드라마 한 편 한 편에 대한 소감을 말하려 함이 아니라, 중드에 진심인 한 시청자가 중드를 대하는 태도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누구나 어떤 대상을 꾸준히 사랑하고 즐기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해 어느 순간 남들보다 더 말할 거리가 많아지게 된다. 오랜 수련 후에 무림의 고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취미가 수련에 비할 수는 없어 내가 중드의 세계에서 미처 고수는 되지 못했지만 나의 취향이 하나의 문파를 이룰 수 있지는 않을까? 지금부터는 그 이름을 짓는 데에 당분간 몰두해 봐야겠다. 취미파? 소일사? 개취파?
중드를 보며 아동청소년기를 보냈고, 육아의 시간을 버텼다. 지금도 매일 중드를 보고 있으며, 사는 동안 내내 중드를 볼 것이다. 그것은 나의 취향이다. 중드를 보며 중국어나 중국사를 스스로 배우고, 더 나아가 한중미의 관계에도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 그것은 나의 태도이다. 다른 사람에게 중드에 대해 이야기할 땐 눈이 반짝거리지만 귀 기울여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말하지 않는다. 다행히 오래 친분이 있던 사람들은 나의 중드 사랑이 얼마나 지속적이고 진심인지 이해해준다. 그래서 어쩌다 본 중드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면 나를 부른다. “너 거기 있지? 나 (중드에 대해) 할 말 있어!”라는 듯 말이다. 그렇다. 난 언제나 중드 곁에 있으므로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다. 이런 자리매김이 자랑스럽다. 누가 보라고도 보지 말라고도 않지만 늘 중드를 보는 사람이 바로 나이며, 중드를 좋아하는 취향이 진심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주변에서도 안다.
하지만 중드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은 좀 부담스럽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독서량에 비해 아는 게 없다고 조롱하기도 하는데(물론 친밀한 조롱이라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고 나 역시 그 점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이는 그림책에 대해서도 그렇고 중드에 대해서도 그렇다. 좋아하고 즐기지만 내 능력은 평범하다. 대학원의 마지막 학년 전공수업으로 그림책을 배우고 그림책 카페에 가입했을 때 정말 많이 놀랐다. ‘인생도처유상수’는 진리였다. 명색이 전공수업도 듣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라 꾸준히 그림책을 읽어온 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의 내공이 상당했다. 마찬가지로 중드 카페에 올라오는 중드 관련 글들의 내공을 보면 나는 그들의 3초식은 커녕 단 한 번의 초식 안에도 피를 토하며 쓰러질 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 더구나 다음에 쓸 추천 중드글은 더더욱 그러하다. 부디 고수들의 조롱을 피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