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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Oct 21. 2023

중국사를 공부하기에 좋은 중드 2

<적인걸>부터 <천명>까지 

당나라 이후부터는 시대의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강정만의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었다. 최근엔 [한나라 황제 평전]도 출간되었지만 내가 공부할 땐 [당나라 황제 평전]부터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중톈중국사]와 [천추흥망]시리즈도 같이 읽었다. 당나라 드라마는 측천무후와 양귀비라는 캐릭터가 너무 강해 자칫 암투물로만 볼 수 있어 그 둘을 요부로 그리지 않는 드라마를 보려고 노력했다. <적인걸> 시리즈 등을 통해 측천무후를 한 걸음 떨어져서 봤고, 안사의 난 전후를 <대당영요> 시리즈와 <대당유협전>을 보며 도움을 받았다. <장가행>이라는 드라마는 이 드라마들 보다 앞선 시대 즉 당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허구가 많아 공부보다는 재미에 도움이 된다. 이 드라마는 디리러바와 오뢰라는 최고 인기 배우들보다 ‘호도’를 부르는 가녀린 조로사와 그에 대해 뻣뻣한 사랑을 하는 류우녕이 더 인상깊다. 조로사의 연기 변신에 대해 상반된 의견이 있지만 내 기준에선 어떤 로맨틱 드라마에서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류우녕은 이때부터 내 '고막남친2'가 된다. <풍기낙양>, <장안12시진>, <어사소오작>, <대당여법의>도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들은 다음 주제인 추리 드라마에서 다시 소개하기로 하겠다. 


송나라는 송진종의 <대송국사>를 보며 시작했다. 송진종 시대 거란과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맺게 된 ‘전연의 맹’의 배경을 알게 된 점이 좋았다. ‘전연의 맹’에 대해서는 뛰어난 정책이라는 입장과 굴욕적인 조약이라는 입장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송진종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이후, 외침이 많은 시대에 국방에 힘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송나라 모든 황제들의 실책이라 하겠다. 송인종 시대에는 유명한 <포청천 시리즈>가 있고 최근 <청평악>이 방영되었다. 북송이 망하고 남송 시대에는 황제들은 볼 사람이 거의 없고 뛰어난 장군이 있으니 그가 바로 <정충 악비>이다. 이순신 한 사람으로 한 나라를 구하기 어렵듯 악비 한 사람으로 망해가는 송나라를 어쩔 수가 없다. 더구나 당시 송나라 황제들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몽화록>은 송나라 진종 시기의 일반 백성들의 이야기인데 송나라가 상업을 중시한 나라라는 점을 화면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원나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김용의 사조삼부곡 중 <의천도룡기>에서 흔적만 느낄 수 있을 뿐 찾기가 어려웠다. 몽골은 현존하는 국가라 원나라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모호한 모양이다. 우리에게 일제강점기가 있듯이 그저 당시는 몽골강점기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린 일본이 우리 역사라고 하지 않는데 왜 중국은 몽골을 자기네 역사라고 하는 거지?


명나라 건국기를 다룬 드라마 <주원장>은 후쥔(호군)의 연기가 압권이다. 유기 역할을 한 쩡샤오닝(정효녕)을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여담으로 이때의 쩡샤오닝(정효녕)이 연기한 유기의 모습이 얼마나 좋았던지 <성한찬란>에서 우레이(오뢰)를 보는 것보다 여양왕으로 잠깐 등장하는 이 더쩡샤오닝(정효녕) 반가웠다. 이렇게 말했다가 주변에서 “취향 거 참!”이라며 핀잔을 들었지만 말이다. 명나라는 주원장, 영락제 그리고 홍치제 정도를 빼고는 죄다 무능한 왕들 천지다. 어쩌자고 조선은 이런 나라를 따랐나 싶을 정도로 공부하면 할수록 명나라는 배울 점이 거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계라 수사기관만 많다. 그래서 수사물이 많은 편이다. 암군으로 알려진 가정제 시기의 <금의지하>도 드라마로서는 후속작을 기다릴 정도로 재밌지만 공부에는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영웅 척계광>을 보면 앞의 <정충악비>가 떠오르는데 악비가 송나라를 구하지 못했듯, 척계광도 명나라를 구하지 못한다. 이순신의 외로움이 또 한 번 느껴진다. 원나라야 중국의 입장이 애매해서 그렇다고 쳐도 한족이 지배했던 명나라는 드라마가 많지 않을까? 명나라가 황위 계승 원칙이 엄격하여 후궁 암투가 적었던 까닭이라고도 하던데 내 생각엔 파면 팔수록 매력이 없던 시대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수사물 영화나 드라마는 지금도 많이 생산되고 있지만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나라 드라마는 타임슬립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은 <보보경심>(강희제 시기)과 <황제의 딸>(건륭제 시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청나라 드라마는 강건성세에 몰려있다. 강건성세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까지의 청나라 전성기를 이르는 말인데 그래서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의 황제들이 등장한다. <옹정황제의 여인(후궁견환전)>(옹정제 시기)이 그중 가장 재밌었는데 애초 책만 볼 때와 달리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건륭제보다는 옹정제가 낫고, 옹정제보다는 강희제가 낫다. 건륭제 드라마는 <연희공략>과 <여의전>은 거의 같은 시기에 방영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연희공략>이 훨씬 많은 인기를 끌었다. 고증 역시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 해석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으므로 한 가지만 보려거든 고증이 더 잘 된 작품을 보는 게 낫고, 두뇌를 활성화시키려거든 두 작품을 모두 보는 것도 좋다. 재미로 보려면 가상왕조이겠거니 하고 보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앞선 시대 홍타이지 이야기인 [독보천하]가 재밌었는데 드라마가 재밌다기보다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공부를 엄청 많이 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도대체 동가는 어떤 여인이라서 누르하치부터 홍타이지까지 정신을 못 차리지? 공부를 해 보니 동가는 실제 인물들 여럿을 섞어 인물인데 청나라 건국 초기의 권력다툼을 더 재밌게 만들려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침략당한 역사가 없었다면 홍타이지를 좀더 다르게 평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 지점도 있었다. 물론 드라마만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같이 읽은 책들에서 홍타이지의 성품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에 [효장]이라는 책도 읽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다소 부정적으로 그려진 봄부타이 이야기로 홍타이지 시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 서태후에 대한 책도 읽었는데 역사가 여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서태후를 악녀로 말할 수만 없듯이 효장 역시 어진 사람으로만 여길 순 없을 터, 그런 유연성은 드라마가 쉬워 책과 드라마를 같이 보는 게 지식 뿐만 아니라 생각에도 숨구멍이 트인다. 가경제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청나라 후반의 왕들이 무능하지만 가경제로서는 억울한 평가일 수도 있겠다. 화신이라는 간신을 만든 게 결국은 건륭제라는 점, 그 간신을 없애고자 분투를 했다는 것을 드라마 <천명>을 통해 알았다. 물론 그것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그런데 예전 홍콩 영화의 영화(榮華)는 어디 가고 이 드라마는 왜 이렇게 촌스러운 걸까? 홍콩 드라마 몇 편을 봤는데 내가 중드를 멀리했던 그 시기에서 멈춘 듯한 영상미가 안타깝다. 특정 제작사의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공부는 청나라까지만 하기로 했다. 청나라까지 하고 나니 다시 주나라부터 잊기 시작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몽테뉴를 다루면서 ‘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는 망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독서’라고 말했는데 중드도 마찬가지이고 중국사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글을 써도 겨우 기억의 끈 한 줄기만 가질 수 있는 모양이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몽테뉴도 자신이 쓴 글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는데! 하지만 중드와 함께 중국사를 배우는 시간들이 더없이 행복했다.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묻는다면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즐거웠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중국사 전반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공부는 마무리를 하고 당분간은 재미 중심으로 드라마를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한 번 알게 된 것을 억지로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법,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볼 때면 머릿속 시냅스들이 바빠지고 나는 더 즐거울 것이다. 드라마 한 편으로도 충만해질 수 있다니 어찌 중드에 진심을 담지 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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