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를 읽을 때면 말도 안되게 척척 추리를 해내는 홈즈에게 매번 “당신은 신이냐?”고 속으로 묻게 된다. 아니 신발만 보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까지 아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뭘로 당한단 말인가! 애거서크리스티가 창조한 포와로나 마플 여사는 그에 비하면 인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홈즈도 사랑한다. 추리를 하려는 건 내가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탐정이 추리를 하는 그 과정을 함께 즐기기 위해서니까.
중드에도 추리 드라마가 있어 무협물과 더불어 내가 즐겨 보는 장르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중국의 많은 추리 드라마에는 긴장감이 없다. 범인이 누구인지 진작에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범인의 수법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홈즈처럼 척척 나도 모르게 증거를 찾아내 추리를 해낸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추리물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고 수사물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듯 하다. 그 단순함이 매력이라면 매력이요, 허점이라면 허점이다. 내게는 그것마저도 재미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순진한 면을 사랑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
<판관 포청천>시리즈와 <적인걸>시리즈는 관리가 수사를 하고 판결까지 내리는데, 더구나 그 관리가 황제직속에 가까워 판결에 거침이 없다. 다행히 두 사람이 정의롭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죽어나는 건 약자들 뿐일 터다. 그런데 과연 그런 나쁜 권력자가 없었을까? 아마 아주 많았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포청천과 적인걸의 이름이 눈에 띄게 남아있을 터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리는 알고 있다. 포청천과 적인걸은 큰 어려움없이 사건을 해결할 것이라는 걸. 따라서 긴장감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마치 처음 보는 얘기인 양 ‘어쩌냐 어쩌냐’ 애타 보이던데 진짜 걱정하는 걸까? 아니다. 그건 엄마만의 중드 시청 추임새에 가깝다. 매번 같은 스토리의 아침드라마에도 그러했으므로. 포청천과 적인걸 외에도 시대마다 한 명씩은 있는 청렴하고 정의로운 관리가 있었고, 그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에는 사건 해결이 꼭 포함된다. 당시 관리가 담당해야 했던 역할은 ‘총체적’이었으므로. 탐정 정약용처럼!
<대송소년지>와 <금의지하>, <사대명포> 등은 각각 비밀조직, 금의위와 육선문, 천하무적 수사단이라는 조직이 중심이 된 사건물이라 포청천이나 적인걸 보다는 긴장감이 크다. 조직원들간의 사랑과 경쟁도 긴장감을 주는 요소가 된다. 떡볶이로 치면 포청천과 적인걸은 순한 맛이고, 뒤의 작품들은 보통 맛 정도가 된다. <어사소오작>이나 <소년대인>은 5단계 매운 맛 중 2단계 쯤이 될 것이다. 로제 떡볶이랄까?
매운 맛 코스로는 <풍기낙양>과 <장안 12시진> 등을 들 수 있다. <풍기낙양>은 측천무후 시대 무사월이라는 고위관리와 천민 출신의 고병촉 그리고 한량 귀족인 백리홍의가 공교롭게도 하나의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다룬다. 세 사람의 신분이 제각각인 만큼 서로를 견제하는 긴장감도 강하고, 몸을 잘 사용하는 황헌과 빅토리아의 액션 연기가 뛰어나다. 백리홍의 부부의 독특한 사랑법도 작은 재미를 준다. 중드는 회차가 길어 보다 보면 고구마 구간이나 시간 때우기 구간이 있어 몰아서 볼 때 건너뛰면서 보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풍기낙양>의 경우 못 본 장면은 기어코 돌려서 다시 보고 진행해야 했을 정도로 느슨한 구간이 없었다. 이 드라마를 보곤 황헌의 연기력과 목소리에 반했는데 다행히 이번엔 앓지는 않고 인정하는 단계까지만 갔다.
<장안 12시진>은 원작 소설을 읽기 위해 본 드라마인데, 드라마도 소설도 초반 진입이 어려웠다. 드라마는 너무 어두운 장면들이 이어져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고, 소설은 장안을 묘사하는 장면이 언뜻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드라마를 틀어 놓으면서 책을 읽으니 웬걸 둘다 재밌어졌다. 윈윈효과는 드라마와 원작소설에도 유효했다. 이 드라마를 시작으로 마보융의 소설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쓴 역사추리소설은 실제 역사와 허구를 잘 버무려놓아서 빠져들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적지 않다. 앞서 말한 <풍기낙양>도 그러하고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삼국기밀>과 <풍기농서>가 있다. 그러고 보니 죄다 어두칙칙하게 시작하는구나! 다른 원작이 있는 드라마들과 달리 무게감이 있다는 게 마보융 원작의 특징이라 그로 인해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유명한 배우들이 선호한다는 데에는 분명 작품성이 주는 매력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다행히 번역된 소설이 많으니 소설과 함께 읽어볼 수도 있어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윈윈효과를 누려보자.
여성 오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어사소오작>은 저예산 드라마이지만 탄탄한 연출과 연기 및 재미있는 구성으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오작인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검시관이며, 당시 천민의 일이었고 더구나 여성의 일은 아니었다. 송나라에 들어서야 겨우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대당여법의>는 판타지에 가깝다. 검시의 과정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면 두 드라마를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분이 다른 두 남자의 수사 과정을 다룬 <군자맹> 역시 재밌는 역사추리물이다. 다만, BL물이 원작이라 검열의 나라 중국 당국의 가위질을 많이 당해서 중간 중간 뭔가 잘려나간 느낌이 드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분량이 짧아 중드 입문자들에게 부담이 적을 수는 있겠다. 제대로 방영되었다면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았겠지만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연화루>에 대해서는 기대치만 높아져서는 못 봐서 현재 몹시 안달난 상태이다.
나는 고장극파라 현대물을 거의 보지 못해서 중국의 현대 추리물이 어느 정도의 작품성을 띠는지는 평가 못하겠다. 가끔 전해 듣거나 짧은 영상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추리 드라마는 매운 맛의 꼭대기를 찍던데 그 때문에 차마 나는 정주행하지 못하겠다. 중국의 추리드라마도 그럴까? 어쩌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했다고 해서 살짝 맛만 보았을 때는 그 정도의 매운 맛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도리어 허술함에 두 눈을 뜨지 못한 경우는 있었지만) 좋은 작품이 있다면 현대물이라도 수사물이나 추리물은 볼 의향이 있다. 말과 다르게 유일하게 본 현대물이 <아, 희환니>라는 점은 쑥쓰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