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Oct 21. 2023

고장극에 협을 뺀다면,

시대물

어제 엄마들 단톡방에는 남궁민의 이름이 올라왔다. 드라마 <연인>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연기가 중년 여성의 마음에도 연애세포를 활성화시킨 모양이다. <스토브리그>에서부터 좋았다는 평, 더 멀리 <순풍산부인과>에서부터 알아봤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 역시 남궁민을 좋아한다. 내가 본 그의 연기는 비록 <순풍산부인과>와 최근 <연인>의 한 두 장면 뿐이지만 말이다. 단톡방의 글을 읽을 때 <옥골요>를 보던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여배우의 귀여움이 와닿지 않아 흥미가 자꾸 떨어지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샤오잔의 얼굴에 남궁민을 넣으니 흥미로워졌다. 아, 이건 여배우의 문제가 아니었어! 샤오잔이, 나의 쟌쟌이 너무 젊고 잘생겼기 때문이었구나! 그나저나, '신선 남궁민' 너무 잘 어울리는데? 


남궁민이 신선의 모습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더 길게 상상해본다. <중자>의 사부, <옥골요>의 사부, 심지어 <화천골>의 사부까지 모든 사부님의 모습이 다 잘 어울린다. 그런데 신선으로 나와도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무협 특히 선협물에 대한 취향은 매니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변 사람들도 드라마에 신선이 뭐냐며, 금도끼 은도끼냐며, 선협물을 어이없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무협물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일부에선 환영받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궁민은 왜 저런 드라마를 찍었냐'며 안타까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인>의 인기를 봐도 알듯,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사극은 또 좋아한다. 그러니 다모 신드롬, 연인 신드롬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 대하사극부터 퓨전사극까지 다양한 사극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극을 좋아하는 분들은 케이블에서 나오는 <주몽>을 아직도 보고, 각종 다양한 왕을 연기하는 최수종을 현재도 반복적으로 만나고 있다. 마치 중드 팬이 <삼국지>나 <옹정황제의 여인>을 다시 보듯이 말이다. 

  

중국사를 공부할 때 중드의 도움을 받았다. 중국은 고장극에 강점이 있는 나라라 굉장히 많은 역사물이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주몽부터 만들어도 이 정도인데, 중국은 <봉신연의>부터 만들었다쳐도 우리보다 자그마치 1000년치를 더 만들 수 있다. 미국에 고장극이 없는 게 당연하듯, 중국에 고장극이 많은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중국사를 공부하며 고비가 올 때마다 중드를 찾아보며 흥미를 되찾았다. 중국에 역사드라마가 많아서 참 다행이라며 그 방대한 양에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단 실제 인물을 그려낸 논픽션 뿐만 아니라 추리물,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궁중암투물 등 현대극에서 그릴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고장극으로 만들어낸다. 현재 중국의 현대극들도 완성도가 높아지고 SF물까지도 많이 만들어지지만, 아직까지는 중드의 정체성은 고장극이라고 생각한다. 고장극에서 협을 뺀 것만도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 어마어마한 양을 감당하지 못해 나는 그냥 시대물이라고 있다. 그 안에서 역사물, 궁중암투물, 타임슬립물, 역사추리물 등으로 부른다. 


시대물로 가장 대표적인 장르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역사물이다. <신삼국지>나 <초한전기>, <대진제국>같은 드라마는 우리나라 <태조 왕건>이나 <광개토대왕>과 같은 정통사극인데 이런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고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몇 드라마들이 고증을 잘못하여 방영이 취소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던 만큼 역사 문제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라 잘못될 경우 제작에 들인 비용과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는 인물, 사건은 물론 당시의 복장과 문화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장르보다 방영 회차가 길어서 연기의 호흡이 무척 중요하다. 그런 모든 것이 잘 맞아지면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들이 찾게 되는데 바로 <신삼국지>, <초한전기>, <대진제국>가 그러하다. 방영된지 1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기가 많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는 드라마이다. 나 역시 이 드라마들을 통해서 중국사를 풍성하게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 우화위, 장빈천, 진도명, 하윤동, 장보 등의 믿고 보는 배우들을 만나 이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는 우선적으로 시청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제작사를 중심으로 배우, 작가가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다른 드라마에서도 많은 배우들이 겹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어떤 배우를 믿는다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제작사와 작가를 함께 믿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또다른 시대물로 궁중암투물을 들 수 있는데 궁중암투물도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도 하지만 역사물에 비해 창작이 많이 가미되는 편이다. 인물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의도적으로 기존의 지식을 위배하기도 하고, 앎이 아니라 재미가 더 큰 목적인 궁중암투물도 있어 고증이 그리 깐깐하지는 않다. 다만, 최근에는 중국이 드라마를 통해 동북공정을 하려고 하는 조짐이 보여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좀더 예민하게 시청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 강수연이 주연을 맡았던 <여인천하>를 떠올리면 궁중암투물은 역사물에 비해 자극성이 높은 편이다. 최근에 본 중드 <심궁계>는 당현종을 둘러싼 여인들의 암투를 다루고 있는데 특유의 화면 전환 기술이 유치하지만 극적인 느낌을 줘서 아침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궁중암투극은 우리나라의 아침드라마와 많이 닮았다. 아침드라마가 여성인물들의 경쟁구도를 그리듯 궁중암투극도 대체로 후궁들의 암투를 그린다. <미월전(춘추전국시대)>, <모의천하(한나라)>, <연희공략(청나라)>, <옹정황제의 여인(청나라)> 등이다. <랑야방>이나 <천성장가>같은 남성 중심의 궁중암투극이 권력을 쥐기 위한 힘겨루기인데 반해 여성 중심의 궁중암투극은 주로 왕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라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더구나 그들의 힘겨루기가 그녀들을 바둑알로 사용하는 남성 집단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불편하다. 심지어 황제였던 측천무후를 다룬 드라마조차도 정치적 업적보다는 암투에 관한 내용이 더 많다. 그래서 더 자극적이다. 다행히도 최근엔 측천무후를 비롯하여 많은 여성 정치가들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책과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엔 고증 문제의 번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가상왕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많다. <랑야방>, <상양부>, <백발왕비>, <학려화정> 등이 유명하다. <설중한도행>의 경우는 가상왕조를 배경으로 하지만 실존했던 나라명을 쓰고 있어서 실제 역사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가상왕조를 배경으로 하다보면 고증의 문제에서도 자유롭지만 현대적인 느낌을 살려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축소된 여성의 역할을 드라마 전면에 내세울 수도 있고, 나라를 세우고 엎는 데에 고려할 부분이 적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좀더 마음이 편할 테지만 없는 역사를 만들어야 하니 내용이 탄탄하지 않고서는 완성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원작 소설로 먼저 검증된 작품들이 많다. 


최근 가상왕조물이 많아졌지만 그전엔 한때 타임슬립물이 많이 만들어졌었다. 타임슬립물은 현대의 한 여성이 과거 궁중으로 떨어져 후궁들의 암투에 휘말리는 스토리가 가장 흔한데, <궁쇄심옥>을 비롯한 궁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고장극 뿐만 아니라 대만드라마 <상견니>처럼 현대물에서도 타임슬립물은 인기가 있는 장르인데 중국의 경우에는 몇 년 전에 타임슬립물 금지령이 내렸다고 한다. 이유는 어린이들이 천월(타임슬립)을 하려고 뛰어내려서 죽는 경우가 있어서라는 말이 있는데 어릴 적 슈퍼맨을 보고 따라했다는 뉴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저런 말이 많고 규제도 많지만 어찌 됐든 아직도 꾸준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장르이다. 어릴 적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시대로 가는 상상이 즐거웠지만 지금은 드라마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대놓고 이건 픽션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흥미가 떨어진다. 어릴 적 본 <백 투더 퓨처> 하나면 충분하다. 순전히 내 개인적 성향이다. 기왕 갈 거면 미래로 갈 것이지 과거로 가서 뭐할라고?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췌서>는 그간 다른 타임슬립물과 달리 남자가 타임슬립을 한다는 점이 색달라 시작부터 흥미로웠다. 게다가 남자주인공이 보편적 외모를 지닌 사람이라는 점도 색달랐다. 더구나 그가 과거의 어느 집안에 데릴사위로 들어가 아내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설정이 일반적인 타임슬립물과 달라 반가웠다. 묵직한 드라마들을 보는 사이사이에 이런 개성있는 드라마를 보는 건 환기가 된다. 타임슬립물은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힘을 좀 뺀 드라마라 가볍게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장뤄윤(장약윤)이 주연한 <경여년>은 묵직하다. 원작소설도 몇 권이 될 정도이다 보니 탄탄한 스토리와 믿을 만한 주연 배우가 드라마를 이끌어가서 타임슬립물로는 드물게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다음 시리즈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시청자가 많아 ‘카더라 통신’도 많은 인기작이다.      


중국사를 공부하며 중드를 보다보니 궁중이야기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점을 한계로 느끼면서도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다. 역사는 힘이 있는 자들의 기록물인 경우가 많고, 전제국가에서 가장 힘이 있는 자는 왕이니까 왕의 이야기가 가장 많다. 정사에 야사 거기에 상상까지 더해진 궁중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호기심 외에 자극적인 성격까지 띄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최근엔 청춘들의 사랑까지 더해져 시청자들의 연령층도 확대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대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평범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더 궁금하고 알고 싶다. 그래서 아직은 무협물이 더 좋은 지도 모르겠다. 조정의 이야기와 별개로 펼쳐지는 시대를 담고 있으니까. 그나마 역사추리물들이 그런 아쉬움을 간간히 달래주고 있다. 


역사추리물로는 단연 송나라 개봉부윤 포증을 주인공으로 한 <포청천>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뒤이어 당나라의 재상이었던 적인걸을 주인공으로 한 <적인걸>시리즈가 있고, 명나라 금의위와 육선문 인물들이 주인공인 <금의지하>가 있다. 오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어사소오작>이나 추리 천재가 등장하는 <군자맹>, 무협과 추리가 만난 <연화루> 등 꾸준히 만들어지는 장르이다. 고장극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현대극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역사추리물만큼은 흥미롭게 보는 편이다. 중국 역사추리물은 고장극에 강점을 기본 바탕으로 추리가 가미된 터라 고장극이라는 문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스릴러나 서스펜스, 추리를 기대한다면 좀더 손품을 팔아야겠지만. 

이전 23화 트렌디한 선협의 세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