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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Oct 19. 2023

트렌디한 선협의 세계

선협물의 대표적인 예가 <삼생삼세십리도화>로 천계와 각 지역의 신선들 이야기, 선계와 마계의 대립, 세 번의 겁 등 선협물 필수 구성요소가 두루두루 나온다. <화천골>, <구주천공성> 시리즈와 <유리미인살> 역시 그러하다.


정통적인 무협물에서 정파가 사파를 무찌르듯 선협물에서도 선계가 마계를 멸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도이다. 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 정파와 사파, 선계와 마계를 구분짓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는 듯한 작품들이 등장하더니 지금은 오히려 그런 작품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무림정파니 신선이니 하는 이름으로 남을 속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인물도 있고, 마교나 마계이면서 남을 돕고 순수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주선 청운지>시리즈의 장소범은 1980년대 드라마였더라면 마을의 복수를 위해서 마교든 뭐든 다 흡수해서 다 쓸어버릴 캐릭터인데 마교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단히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유리미인살>의 우사봉 역시 요족 출신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자신을 희생하는 반면 천계의 백린대군은 세상을 구한다는 명분 하에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드라마를 볼때면 옳고 그름이 소속된 이름값으로 평가받는 것이 정당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선악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지던 트렌드에서 또 벗어나 최근의 선협물은 무협물이 그러하듯 로맨스가 많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앞서 말한 <삼생삼세십리도화>는 3번의 삶을 살아도 단 하나의 사랑을 한다는 게 제목에서도 드러나고, 조연인 봉구와 동화제군의 이야기는 따로 <삼생삼세침상서>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온통 사랑이 주제이다. <화천골>은 한 소녀가 선악을 모두 겪어내는 처절한 성장기이지만 그 성장의 처절함 못지않게 스승과 제자의 사랑도 절절하다.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달달한 면 보다는 단장지애에 가깝다. <유리미인살>을 볼 때 과연 몇 명이나 선악의 대결로 보려나 싶을 정도로 이 드라마의 메인 스토리는 선기와 사봉의 직진하는 사랑이다. 삼생삼세는 갖다댈 수도 없는 십생십세 우사봉의 사랑이라니! <구주천공성2>는 어떻고? <화천골>처럼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긴 하지만 절절함 대신 달달함이 있다. 서정계의 사랑 가득한 표정이 지금도 떠올라 다시 보고 싶어지려 한다.
이 밖에도 인생중드라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드라마 <향밀침침여신상>, 장첸과 니니의 <신석연>도 정말 궁금한 로맨틱선협물이다.


하지만 연애세포가 말라버린 내게 로맨스는 이입이 잘 안 되는 주제이다. 세상에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감정노동으로 50회 분량을 낭비한다 싶은 선협물도 많아 고르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기승전로맨스는 최악이다. 20대의 나는 사랑 지상주의자였는데, 어쩌나 사랑을 감정낭비라 여기게 되었는지 삶은 드라마보다 반전이 크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그래, 희로애락제대로 느끼려면 리얼리즘만한 게 없지. 그래서 내가 현재를 그리는 드라마를 피하는 거다. 삶이 더 진한데 굳이? 현실에서 못하는 걸 보자. 그래,  신선하고의 사랑이라니 얼마나 허황되고 좋은지. 이런 생각이 좀 별난 걸까?


 그건 아닌 것이 최근 선협물을 찾는 이가 늘어 추천 선협물 목록을 공유하는 글도 적지 않다. 선협물이 많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특히 로맨스 중심의 선협물이 하나 건너 하나일 때 어찌 보면 우민화 정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들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걸까? 나처럼? 하지만 단순한 로맨스 선협물 밖에 선택지가 없다면 나는 망설일 것 같다. 내 의지로 애써 선택하는 것이 아닌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리모콘으로 다음 작품을 고를 때 선협물이 너무 많이 보이면 우려가 된다. 요즘이 딱 망설이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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