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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ug 15. 2021

[생각일기] 사명감이 없는 의무감

국민이 대통령의 이름도 몰라야 그 나라가 안정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에 기대자면 어린 시절부터 내가 대통령의 이름도 몰랐던 때는 없었으니 우리나라는 안정된 적이 없는 나라요, 최근으로 올수록 그 이름이 옆집 강아지마냥 불리고 있으니 개판 5분전의 위태로운 나라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렇게 대통령을 하지 못해서 난리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정말 우리나라를 이 위기에서 구하고 싶은 걸까? 난 그들이 구할 능력이 있는지 보다 그게 더 궁금하다.  


대통령이라면 당연 한 나라를 안정되게 이끌어갈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를 모르는 대통령이라면 애시당초 자격이 없는 자이다. 하지만 그 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말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의무를 다하는 것 외에 뭐가 필요할까 궁리하던 차에 떠오른 단어가 '사명감'이다. 사명감은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주어진 일을 다 한다'는 의무에 마음가짐이 포함된 말이라 할 수 있다. 의무가 결과에 중심을 둔 단어라면 사명감은 과정 중심의 단어라 하겠다. 대통령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은 그가 한 행동과 말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했는지는 대통령 본인 마음의 문제라 그것을 살펴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감정이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전달되기에 그 사람이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는지 국민들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다만, 정치적 태도가 피 속까지 배인 정치인이라면 그것마저도 연기할 수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느끼려면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지금 누가 그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지금 대선주자들에 대한 뉴스보도는 코로나19에 대한 뉴스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는 몇번째인지 모르게 대선주자인 사람도 있고 듣도 보도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면 말할수록 그 사람의 사명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간 잘 포장되어 왔던 것일까, 아니면 일단 대통령이 되어야하기에 사명감은 잠시 접어둔 것일까, 그 접어둔 사명감은 대통령이 되면 다시 나오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 만난 대통령 중 몇몇은 사명감이 느껴졌고 몇몇은 사명감은 고난이도 숨은 그림보다 찾기 어려웠다. 열변을 토하는 저 사람들의 마음에는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싶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몇 번이고 대통령에 도전하는 그 마음과 신선함으로 도전하는 그 마음 안에 사명감은 얼마나 포함되어 있을까? 단순한 공명심같아 보이는 건 내가 모가 난 탓일까? 코로나바이러스의 델타변이처럼 그들의 사명감도 감마변이가 되어 낯선 것일 뿐인 걸까?


생각해보면 대통령의 자리에만 사명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 투어를 많이 해 봐서 아는데 의사들 중에 사명감이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게 정말 드물다. 사명감이 있으면서 능력도 있는 경우는 물론 더 드물다. 교통사고 환자에 반색하는 의사를 보면 진료실을 뛰쳐나가고 싶기도 하다. 그럼 나는 어떤가? 내게 교사로서의 사명감이 있을까? 남에게 사명감의 순도를 따질 자격이 내게 있을까? 객관적으로 나를 한 번 들여다보면 내게 교사라는 직업은 당시 우리 가정의 경제 능력과 수능 점수에 맞춰서 결정된 사항으로 이 직업을 통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대부분을 느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감정을 소모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사명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직업을 그만 두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 더더욱 사명감과는 멀지 않을까? 다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직업에 임하는 한 부끄럽지 않게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하자.' 그것이 그나마 내가 가진 사명감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인데 다행히 아직은 그 마음이 아이들과 학부모, 동료들에게 전해지는 모양이다. 이 마음마저 사라진다면 나는 정말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명감이 직업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형제로서, 이웃으로서 등등 의무감이 있어야 하는 모든 관계에 사명감이 따라야 하는 건 아닐까?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는 것이 단지 법적 조치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 사라지는 시대라 의무가 강하게 요구되는 것인지, 의무가 많아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건 분명하다. 생각은 유튜브가 대신해주고 그래서 인간이 가진 복잡한 마음은 단순화되고 있어 이미 사라진 마음들이 내가 자라는 과정에서도 많이 있었다. 대통령을 뽑을 때에도 우리는 그가 의무를 잘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검증을 하지만 그의 마음은 검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이 능력에 우선한다고 믿는다. 내 아이가 일만 잘 하고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상상은 끔찍하다. '헤이 클로버'를 불러서 대화를 시도하는데 얘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거나 '사랑이 뭐야?'라는 질문에 국어사전의 용어 풀이를 할 때 나는 좀 신이 난다. 니들은 모르지 사람 마음? 다행스럽다. 네가 대답을 해야 하는 의무는 다 했지만 더 좋은 답을 고르려는 마음은 없었지? 클로버에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아이가 엄마를 찾고 둘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눈다. 마음을 나눈다. 오늘도 아이를 사명감을 다해 키웠다. 사명감이 없는 의무는 사람이 할 노릇이 아니라는 걸 대선주자들을 보며 그리고 클로버를 보며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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