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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ug 08. 2021

[건강일기] 태닝 말고 스캐닝

방학이라 마우스 잡을 일도 없고, 노력한다고 휴대폰도 좀 덜 잡고, 더운 날에도 그늘을 찾아 하루 1만보씩 걷는 요즘인데 왜 손목은 더 아플까? 아파서 잠도 못 자고 끙끙대며 졸다깨다를 하는 통에 한달에 한 번 있는 독서모임도 다 끝나갈 때쯤 인사만 해야했다. 도대체 왜? 동네 병원에 대한 신뢰를 잃어 어제부턴 다니지도 않는다. 큰 병원에 가려니 그러면 분명 주사 치료나 약물 치료가 필요한데 괜히 코로나19 항체 형성에 방해가 될 것만 같아 2차 접종 후 2주 뒤로 모든 일정을 미루고 있는 터이다. 하지만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왜 아직도 이토록 아픈 거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통증 총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손목이 아프면 목이나 어깨는 덜 아프다. 어디가 아픈 게 더 나은가에 대한 저울질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 답은 '지금 현재의 통증'이다.


몇 년 전 [녹색 인간]이라는 동화책을 읽었는데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건 그 도시에서는 사람의 몸을 스캐닝 해서 아픈 곳을 치료한다는 내용이다. 그 이후 나는 언제나 스캐닝을 꿈꾼다. 우리나라 병원은 너무나 세분화되어 있어 오히려 그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MRI를 찍어도 딱 그 부분만 찍으니 그 부위가 멀쩡하면 그곳은 아무런 질환이 없는 셈이 된다. 그런데 스캐닝이라는 한 여름의 태닝보다 더 매혹적인 의료 기술이 아닌가?


일단 병원에 가면 '스캐닝을 하러 왔습니다.'라고 접수를 한다. 검사 비용을 지불한 뒤 환자복을 갈아입고 스캐닝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 MRI를 찍을 때 가장 힘들었던 '침 삼키지 마시오'와 같은 안내는 없는 걸로 하자. 원활한 스캐닝을 위해 부동 자세까지는 참을 수 있다. 20여 분 간의 스캐닝을 마치고 일상복으로 갈아 입고 나서 귀가를 한 후 일주일 후의 스캐닝 결과를 기다린다. 결과가 당일에 나올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일주일도 충분히 만족한다. 일주일 후 방문한 병원에서 스캐닝 결과를 종합적으로 브리핑 받는다. 가령, 갑상선과 유방에 혹이 많고 식도염과 비염 증상이 있으며 손목에는 드퀘르뱅과 터널 증후군이 동시에 있고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가 발견되었다고. 아울러 비만이라고. 그러면서 진료가 필요한 항목에 대하여 자동으로 접수를 진행하거나 예약을  해 준다. 각 과의 진료 내용이 공유되어 과잉 진료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몇 달을 치료에 집중한다. 몇 달 후 나는 꽤나 건강해진 몸이 되고 몇 년 후 다시 몸이 슬금슬금 아파올 때 스캐닝을 예약한다. 아, 중년이 느낄 수 있는 달콤함이란 이런 게 아닐까? 난 정말이지 태닝같이 멋진 예술은 넘보지도 않는다. 사지육신 아프지 않게만 나이들어 다오!


동화책에서 만난 스캐닝 기술이 엉터리 망상 같아 보이지 않는데 왜 스캐닝 전문 병원이 아직 없는지 모르겠다. 동면 기술과 같은 SF 소설에나 나올 이야기도 머지 않아 보이는데 그까짓 스캐닝이 그렇게 어렵냐고 의학계에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주변에 아는 의료인이 하나도 없다. 세상의 질병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낯선 이름의 질병들은 어떨 땐 동네 의사가 나보다도 더 모르는 것 같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앓는 질병의 이름을 그냥 갖다붙이기도 하고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만 진료를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환자의 증상에 일일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힘들다면 빨리 스캐닝 기술을 도입해달라고 의료인들이 먼저 들고 일어나면 좋겠다. 난 도모할 힘이 없으므로.  이 쨍쨍한 햇볕 아래를 걸으며 '이노무 태양이 왜 이렇게 세노?'하지 못하고 '아 자연 찜질 받는 것 같아 시원~~하네'라고 말해야 하는 그저 아픈 중생에 불과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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