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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ug 27. 2021

[교단일기]어린이라는 스펙트럼

2021.7.7.수


과학 시간은 내가 썩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도 수학을 좋아하고 잘 해서 이과에 들어갔지만 과학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학생이었던 지라 짝사랑하던 생물 선생님도 놀랄 지경이었다.(보통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과목을 잘 하게 되는데 나는...) 그러니 선생으로서 과학을 가르친다는 게 나에겐 이만저만한 부담이 느껴지는 게 아니다. 이런 와중에 과학 전담을 한 적도 있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6학년 과학은 비교적 재미있다. 예전에 과학전담을 할 때보다 내용도 쉬워지고 실험도 간단하다. 그때 그 시절을 밑천 삼아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별로인 건 별로인 거다. 그래도 어쩌겠나 명색이 선생이라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임하고 있다. 대체로 이렇게 자신이 없는 과목은 수업 연구를 더 열심히 하게 되어서 실상 수업의 질로 보자면 더 나을 때가 많은데 아이들도 그걸 느꼈는지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줄 아는 것 같다.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는 없어서 그런 걸로 그냥 둔다. 그리고 아이들 가르치려고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재밌어지고도 있다. 문제는 천체에 빠지려고 하면 단원이 끝나고 식물이 재밌어지려면 또 단원이 끝나는 짧은 교육과정이다.



어찌어찌 드디어 마지막 단원! '빛과 렌즈' 분야인데 첫 실험이 '빛의 색깔'에 관한 실험이다. 원래는 빛을 네모나게 통과시킨 후 프리즘을 거쳐 무지개 빛깔이 나오게 해야 하는 실험이다.

                                 출처 https://kr.freepik.com/


하지만 아이들 집에 프리즘이 있을 리가 없고 오늘의 수업 목표가 꼭 프리즘으로만 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하에 집안의 '아무거나'를 실험 도구로 삼게 했다. 아이들이 이번 수업 시간을 통해 알아야 하는 것을 다음으로 정해놓은 다음 그것에 충실하기로 했다.


1. 빛은 방해받지 않으면 직진한다.

2. 빛은 방해받으면 굴절한다.

3. 굴절하는 각도에 따라 빛의 색깔이 달라진다.

4. 빛은 섞이면 흰색이 되어 우리는 흰 빛을 가장 많이 보게 된다. 애시당초 여러 가지 색깔을 띠고 있다는 말씀! 이게 제일 중요하다.


나의 '아무거나'는 '소독제가 든 분무기'였고 주황부터 초록까지의 스펙트럼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도구로 '무지개를 찾아서' 잠시 카메라를 떠났고 돌아온 아이의 일부는 무지개를 발견하였고, 일부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주 잠깐 스쳐지나갔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 무지개는 그런 것이야! 아주 간단한 경험이었지만 나는 이 시간이 무척 신이 났다. 그래서 집에 와서도 생각이나 아이가 놀이터에 나간 틈에 책꽂이에서 무지개를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찾고 또 신이 나서 클래스팅에 올려서 동참을 촉구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만큼 신이 나지는 않는다. 매번 그렇다. 요즘 아이들이 신이 나는 것은 즉각적인 이익이 있을 때이다.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픈데 그래도 혹시라도 한 사람이라도 신이 나고 그걸 신나하는 우릴 보면 또 누군가 신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왜 이런 게 신이 나지 않지? 서운하다. 그렇게 사진을 올리고 잠시 있다보니 알람이 울린다. 재밌다고 세 가지나 한 아이가 있었다. 정말 조용한 아이였는데 이걸 네가 재밌어해준다니 세상에 너무나 감동적이야! 너의 반짝임은 무지개빛보다도 귀하단다.

우리반 아이의 공무지개


우리반 아이의 인형무지개와 책무지개


사실 어린이들은 모두가 반짝거린다. 그 반짝거림을 어른들이 퇴색시켰으니 어른으로서 그 반짝임을 다시 회복시켜주고 싶다. 이런 나의 작은 바람 때문인지 그간 내가 맡았던 학급은 늘 다른 반 아이들보다 좀 어렸다. 어리고 순수했고 다정했다. 물론 말은 제일 많았지만 대체로. 지금도 그 광을 내는 중이다. '어린이라는 스펙트럼'을 알록달록 다양한 빛깔로 물들이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가끔 만나는 무지개일지라도 그렇게 가끔이라도 반짝하는 때가, 제 빛깔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때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아이들의 무지개 만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증표로 줌 가상 화면도 무지개로 바꿨는데 나의 암시를 아이들은 읽었을까?


덧붙임 : 아이가 만든 책무지개......그런데 어라? 저 책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우리는 서로 모른 체 중이다. 오늘 우리 부장님이 내 책을 6권 사셔서 동학년 선생님께 돌리셨다. 사실 부끄러워서 드리지도 않고 있었는데 사서 선물까지 해 주시다니! 오늘은 내 책에 대해 이렇게 진한 감동을 받는 날이다. 오늘 나의 빛깔은 감동과 고마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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