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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ug 06. 2024

여느 날

여느 날



여느 날은 어느 날 문득 나타났다

어느 날도 어느 날과 같지 않던 어느 날, 여느 날이 불쑥 찾아왔다     


날이 저물 즈음에야 알아차렸다 아, 오늘이 여느 날이었구나! 무더위와 폭우, 아이와 노인, 배움과 가르침 의 극단을 오가며 분주하던  날중에, 어느 날도 여느 날로 느껴지지 않던 그 어느 날에, 여느 날이 한번 다니러 왔구나! 혹시 이 여느 날이 여느 날의 탈을 쓴 어느 날은 아닐까? 그러나     


정황상 여느 날이 틀림없다 검은 밤하늘과 잿빛 달이 증거다 폰케이스에 카드가 잘 들어있다는 게 증거다 내려야 할 정류장에 제대로 내렸고 환승은 계획한 듯 자연스럽다 그러니 어찌 여느 날을 의심할 텐가 오늘은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오늘을 어느 날이라 부를 터인가 여느 날은 이런 거구나 새삼, 

     

여느 날을 만끽하려는데 어느덧 여느 밤이 되려 한다 여느 아침이 여느 오후가 되는 것도 몰랐는데 어느 새 여느 밤이 되려 하다니 억울하다 밤에 더 빛나는 굿모닝 안과 간판처럼 저물지 않는 여느 날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곧 도착 예정이라던 버스가 갓 떠난 버스가 되는 건 예삿일 그러니 여느 날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거야 여느 밤이 찾아와 자꾸만 나를 재촉할 거야 여느 밤의 어둠 여느 밤의 적막 여느 밤의 졸음이 여느 날의 평화를 잠재울 거야 그러니 여느 밤이 오기 전에 버스 손잡이 색깔은 왜 저렇게 알록달록한지 따위로 여느 날을 낭비하지 말자 내일까지 마무리 지을 일에 대한 고민도 하지 말자 여느 날엔 그저 깨어있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말자 여느 날을 여느 날이라 깨닫지도 말자     


 아차,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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