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어제 온 종일 몰아서 일을 할 때는 아픈 줄도 모르고 있다가 퇴근할 무렵부터 온몸을 두드려맞고 꼬집힌 듯 아파 자는 동안도 시름시름 앓았다. 그나마 깨지 않은 것은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과 극도의 피곤함 덕분이었다. 그래도 다음 날의 준비를 마치고 와서 마음만은 편했다.
'개학 첫 날'은 등교 수업일 때에도 되도록 이벤트적으로 계획을 하는 편인데 줌 수업은 아이들이 더 경직되어 있으니 더 그래야 할 것만 같아 나름 어제 계획을 잘 세워두어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나무꾼이 도끼 점검을 안 했을 줄이야! 수업 시작 10분 전부터 문의가 빗발친다. 문제의 요지는 줌 수업 비밀번호가 틀리다는 것! 게다가 어제 좀더 친절한 선생님이 되려고 나눠준 원격수업 안내장에 줌 회의ID도 잘못되어 나간 것이다! 기존 학생들이야 주소를 이미 알고 있지만 어제 전학생도 와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다행히 전학온 아이는 똘똘해서 줌링크를 통해 잘못 전달된 주소를 수정할 수 있는 사고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비밀번호만 다시 공지해주어 대부분은 해결이 되었다. 해결이 안 된 아이들과는 통화와 카톡 메시지를 통해 결국은 다 해결이 되었다만 세상 이런 시작이라니 나, 어쩌면 좋니?
아이들이 모두 입장하고 아이들과 방학동안 지낸 일에 대한 학습지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특히 전학온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고, 가장 늦게 들어온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내가 원래는 이렇지 않은데 오늘 좀 그런 모습을 보여서 부끄럽다."고 말하니 학습지를 푸는 정수리들 사이에서 "원래도 좀 그러시곤 하시죠."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녀석, 바른 말을 참 잘한단 말이지!
통증 총량의 법칙처럼 허당 총량의 법칙도 있으면 좋으련만 허당 짓은 예상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허당어린 내 모습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저 선생님이 오늘도 정신이 없으시구나.' 혹은 '세상엔 이런 선생님도 있어야 인간적이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나를 다 받아준다. 전학 온 아이도 조만간 동화되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허당미가 넘쳐서 좋은 건(합리화로 충분히 보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아이들에게 야박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은 내가 이해받는 만큼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이 생기니까. 간혹 어떤 선생님은 본인이 너무 완벽하여 아이들에게 야박하고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완벽한 선생님은 물론 훌륭하지만 훌륭한 사람이 좋은 교사는 아니지 않을까? 물론 내가 좋은 교사라는 뜻은 아니다. 난 그저 헤매는 교사이다.
네 학기 째 원격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늘의 수업은 좀 정신이 산만하긴 하였지만 내일은 더 산만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올림픽을 줌에서도 도전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헤매다 보면 내년엔 좀더 낫지 않겠어? 지금의 너희들에게 미안하다만 그래도 작년보단 나은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