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여덟 살 로맨티스트

by 횸흄

비명소리가 높고 날카로워 산후 조리원에서도 눈에 띄던 아이였다. 약을 먹이는 것이 너무 어려워 입원을 해서도 간호사와 내가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다. 울 땐 사자같고, 까탈을 부릴 땐 장어같은 아이였다. 동시에 말랑하기가 이 세상 말랑거림이 아닌 아이이기도 했다. 간호사들의 진땀을 빼고서도 눈을 맞추며 반달 눈웃음을 발사하니 뜻밖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말을 너무 늦게 떼어 걱정이기도 했는데 내 걱정과는 달리 표정으로 모든 표현을 다 하여 어린이집에서도 무척 사랑을 많이 받았다. 네 돌이 다 되어서야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아이였는데 덕분에 더 보호를 받고 사랑을 받았다. 사자같고 장어같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점점 그 모습은 사라지고 달콤한 초콜릿 같은 아이가 되어갔다. 부모 중에 그런 사람이 없던 지라 더 신기하였다. 나이터울 많은 형아, 아빠, 엄마, 할머니 곁에서 살다보니 눈치도 빨라진 걸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예들이 이 아이의 특성을 말해주지만 그것을 다 기억할 수 없어 어느 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이는 2022년 여덟 살이 되었다. 이젠 제법 의젓해져서 세배도 잘 한다. 직접 찾아뵙지 못한 어른들이었지만 세뱃돈은 보내주셨기에 내가 절 받을 때 나눠주니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입이 귀에 걸린다. 마지막으로 지갑에서 돈을 털어내니 지갑이 거의 텅 비었고, 세상만사 큰 관심이 없는 큰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는데 작은 아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엄마 돈 없어진 거야? 내 거 줄까?"

그러면서 제가 받은 돈 중에 아무렇게나 나에게 몇 장을 건넨다. 아니라고 웃으며 돌려보내자 마지못해 다시 넣는다. 물론 그중 2만원만 아이에게 주고 다 아빠가 저금을 하기 위해 가져갔다. 그러니 아이 수중엔 2만원만 남았다. 원래 어린 날의 세뱃돈이란 그런 법이지...


잠자리에 들러 방에 들어가니 작은 캠핑 의자가 이부자리 옆에 놓여있다.

"엄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 먼저 그 의자에 앉아!"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다음 손을 배꼽에 놓고 나한테 인사를 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해야 해."

저도 세배를 받고 싶었나 싶어 웃기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 세뱃돈!"

2만원이었다. 제 수중에 들어온 세뱃돈의 전부인데 그걸 날 주는 거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 나 주려고 이렇게 한 거야?"

"응! 엄마는 세뱃돈 다 줘서 하나도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주는 거야."

"그럼 넌 없잖아?"

"나 있어! 그러니까 그냥 받어!"

안 받으면 서운할 것 같아 받아서 지갑에 쫙 펴서 넣었다. 꼭 안아주며 이 돈으로 맛있는 거 사먹야겠다고, 너랑 꼭 같이 가서 사먹고 싶다고 말하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엄마가 흘린 눈물이 감동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지 뿌듯한 얼굴이다. 그러면서

"이거 비밀이야!"

"응!"

아마 아빠랑 할머니가 질투할까봐 그러는 모양이다. 더 깊은 뜻이 있을 지도 모른다 얘는.


다른 날 보다 더 사랑스러운 우리 모자. 어디서 요런 아이가 태어났나? 최수종도 울고 갈 이벤트의 황제이다. 작게 작게 이런 이벤트들을 자주 해 주는 편이었지만 이번엔 비교적 큰 이벤트여서 더 신기했다. 꼭 안고 잠자리에 누워 볼에 뽀뽀를 쪽쪽하는데 얜 뽀뽀를 하면 닦는 버릇이 있다. 섭섭하지만 그게 나쁜 뜻은 아닌 줄 알기 때문에 그냥 넘기곤 하는데 갑자기 장난기가 생겨

"뭐야? 엄마 뽀뽀를 닦는 거야?"

섭섭한 척을 했더니 당황하여

"어? 아니...."

뭐라고 반응하나 궁금해서 기다렸는데 아주 짧은 찰나에 생각해낸 아이의 말이 기가 막히다.

"아니야! 뽀뽀를 더 묻히는 거야!"

세상에 손으로 쓱쓱 닦아내는 게 아니라 손으로 닦아서 다른 부분으로 넓게 묻힌다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미뤄 짐작하는 능력이 비상한 아이이다.


그 말이 너무 신통방통하여 꼭 안아주며 재웠다. 세상에 여덟 살에 이 정도 로맨틱한 아이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순수하고 신기한 말들이 많기는 하지만 얜 다정함과 낭만에 최적화 되어 있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다. 물론 예전의 사자와 장어 같은 모습도 여전히 남아 있다. 사춘기 큰 아들은 아기일 때나 사춘기인 지금이나 미지근한 온탕의 느낌이라면 여덟 살 작은 아들은 냉탕과 열탕을 오간다.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아빠나 형과 달리 한도초과 수준으로 넘치는 터라 이건 그럼 내쪽의 유전자인가? 나도 그렇게 눈치가 발달한 편은 아닌데 고민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아이들에게 내 입장보단 아이들 입장을 더 읽어주려고 노력하는데, 그 점을 느낀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럼 큰 아들은 뭐지? 그냥 기질과 환경의 탓인가보다. 이제 갓 여덟 살이 된 아들의 다정함이 커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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