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함이라면 빠지지 않는 아이였다. 그 총명함을 내가 따라가지 못할까 염려할 정도였다. 그때 그 총명함을 더 길렀어야 했나 지금은 그런 후회도 하지만 그땐 겁이 나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지금도 뭐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내 성품에 맞으니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두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아이가 총명함과는 거리가 멀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금 열여덟살이 된 아이는 도무지 총명함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입시와 학습에 한정된 말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며 좋은 환경에 아이는 나보다 더 만족했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보내며 아이는 즐겁게는 지내되 학교 공부에는 소홀했다. 어릴 적 총명함을 믿었기에 사춘기 아들과 부딪히느니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렇게 거의 꼴찌에 가깝게 중학교를 졸업했다. 우리 부부가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는 밝았고 뭘 믿고 그런지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서울의 아이들은 우리 아이만 빼고는 다들 입시 공부에 도가 튼 모양이다. 공부 못하는 일반고로 유명한 곳인데도 아이의 성적은 아랫쪽에서 맴돌았다. 그래, 여기니 그나마 중간에 가까운 아랫쪽이겠지 즐겁게 학교 다니면 그걸로 만족했다. 사실 백세 인생에 공부는 언제든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지금 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곤 너무 투자를 많이 하는 거 아닐까? 독서 모임도 무료로만 참여하는 나인데, 이럴 바엔 내가 트레바리 10개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효율만 따지는 일이 아니니 과하지만 않게 투자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학교 생활을 즐겁게도 하지 않는 듯 했다. 학교 시스템도 선생님도 친구들과도 조금씩 엇나갔다. 물론 주변의 탓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예민한 기질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 어릴 때 내가 본 총명함이 실은 예민함이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예민함 자체가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이 힘든 것만은 사실이다. 때로는 주변 사람도 힘들게 할 것이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입시 공부를 시키지 않은 까닭에 하기 싫은 공부를 진득하니 하는 힘이 부족했다.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집중하여 잘 한다는 것,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해내는 것이 집중력이고 능력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을 나이였다. 아이를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돌아보니 나약하게 키운 게 아닐까 속상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잘하게 어떨 때는 큼직하게 한 건씩 엄마 속을 썩였다. 이미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만 하는 아이로 길러졌으니 갑자기 강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과정에서 분명 성장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일단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려는 태도, 자기가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반대쪽의 입장을 따져보려는 태도 등등은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했다. 영혼없이 학원에 왔다갔다하는 아이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며, 그 과정이 어떤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들을 마주하며 엄마인 나는 천불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을 숨기려했지만 어떤 경우는 티가 났을 것이다. 그래도 잘 숨겼는지 모자 관계만큼은 여느 집 부럽지 않다. 그래도, 천불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돌아보니 정말이지 초등학생 때가 그립다.
둘째는 아직 초등학생이다.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데, 엄마 손은 자꾸만 형에게 간다. 둘째도 첫째도 심지어 나도 원하지 않는데, 자꾸만 그렇게 된다. 형이 역롤모델이 되는 것만 같아 큰 아이가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둘째도 눈과 귀가 있다보니 타산지석으로 삼는 듯 하다. 이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정신 승리는 이제 그만 하고 싶은데....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 정말 그땐 손 다 떼고 자기 인생 알아서 하라고 할 것이다. 그걸 하려고 지금 이렇게 기다려주고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데, 과정이 너무 속터진다. 목에 밧줄 묶고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그건 저도 나도 적성에 맞지 않으니 그거라도 통해서 다행인 건지 모르겠다.
사건사고가 돌아가며 생겨 내가 하루는 아들에게 우리 책 쓰자고 말했었다. 이렇게 아들을 키우는 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고. 그 말에 서운해 하더라. 자기가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걸 그때까지 몰랐나보다. 요즘에야 엄마가 힘든 게 제일 싫다고, 자기가 잘 되든 못 되든 잘 생각해서 결정할 테니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새 또 컸나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잘 못 되어가는 게 자꾸만 눈에 거슬린다. 이게 내 문제인지 아이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아이가 빨리 물리적 나이든 정신적 나이든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불이 가슴에 타올랐다. 얼굴 보면 감정쓰레기를 분리수거도 안 하고 다 쏟아부을 것 같아 이렇게 나와서 글로 승화하는 중이다. 아들은 동의하지 않았으니 나 혼자 하나씩 써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