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때 박칼린 씨가 [그냥]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냈을 때도 제목 때문에 읽지 않으려 했을 정도로. 책은 나쁘지 않았으나 지금도 그 제목이 싫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명확한 이유를 알아야 속이 편한 고약한 성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이를 키우면서도 마이너스 요소이다. 엄마가 집요할수록 아이는 벗어나려 할 테니까. 내가 집요한 것을 아들에게 들키지 말라는 각오로 버티는 중이다. 하지만 명확함을 좋아하는 성격은 손해보다는 이득일 때가 많다.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 이건 왜 이런 걸까? 이런저런 궁리가 바로 그 명확함을 헤아리기 위해 일어나곤 하니까 말이다. 난 그것이 공감으로 이어지고 이해와 소통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활동을 할 때 그 까닭을 쓰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되는데, 대부분의 답은 모범 답안과 같지만 반에서 한 두 명 아니면 좀더 많이는 '그냥'이라는 말로 퉁치려고 한다. 동네 아줌마라면 그 이유도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로 말하자면, 동네 아줌마라고 해도 그런 답은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물며 선생님의 자리에서 이 답안을 허용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냥'이라는 답안이 눈에 걸리면 그 답안은 나의 타겟이 된다. '다시 생각해서 쓰라'는 말로 한 번은 돌려 보내지만, '그냥'이라고 쓴 아이가 다시 써와봤자 '재밌어서' 수준으로밖에는 더 나아지지 않는다. 그 다음엔 2줄이든 3줄이든 분량을 정해준다. 그럼 조금 더 구체적이게 된다. 그렇게 가지고 오면 마음이 바다같은 날에는 그냥 받아주지만 물이 다 빠진 소금사막같은 날에는 꼬장꼬장하게 묻는다. 이건 왜 그렇게 쓴거야? 다른 표현은 없을까? 이것과 저것은 어떻게 다른 거야? 등등 질문을 쏟아붓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랑 이야기가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장난끼 심한 녀석들은 '아 몰라요 이게 최선이에요!!!'라고 말하며 줄행랑을 친다. 그제서야 나는 놓아준다. 그래, 애썼다. 우리 둘다.
어젠 '새말사전' 만들기 활동을 하는데, 외래어나 외국어를 우리말 복합어로 바꾸는 활동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는 도넛을 '구멍빵'이라던가 '시소'를 '위아래그네'라던가로 바꾸며 그 까닭을 모양과 움직임에서 갖고 오는데 한 녀석이 6개의 낱말을 만들며 이유를 죄다 '그냥'이라고 써놨다. 최근 이런 용감한 답안을 못 봤는데 요놈 잘 걸렸다! 평소에도 활동지를 대충하는 아이였다. 일단은 감성 촉촉하게 '그냥은 누군가를 좋아할 때나 이유가 될 수 있어요.'라고 평가를 내리고 아이를 부른다. 왜 이렇게 했냐고 물으면 이유가 없다고 하고, 다시 하라고 하면, 아까비라고 한다. 아직은 착해서 거부는 하지 않는다.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반응일 뿐이다. 이유를 찾아낼 수 있는데도 성의를 다하지 않는 것 뿐이다. 그건 이유를 찾고 싶지 않다는 무관심이자 게으름이다. 이것이 학습지이니 망정이지 사람이라면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냥'이 싫은 것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이니까.
수학 시간에도 '그냥'은 허용되지 않는다. 개념 이해에 많은 공을 들인다. 개념을 배우고 나면 개념을 설명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진다. 왜 이 삼각형의 높이는 이게 아니고 저것이지? 왜 삼각형은 평행사변형의 넓이에서 2를 나누는 거지? 등등은 개념을 제대로 배웠다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공식에 대입해서 계산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고등학생 아들 녀석에게 이등변삼각형의 개념과 특성을 서술하라고 하니 어버버버 한다. 개념이 비어 있고 그냥 문제를 풀었구나! 넌, 이등변삼각형에게 모욕감을 줬어! 내 말이 귀에 걸릴 리 없는 큰 아들을 패스하고 그 옆의 작은 아들에게 꼬장꼬장하게 묻고 대답한다. 오늘 엄마는 소금사막이닷!
오늘 아이에게 '그냥은 누군가를 좋아할 때만 까닭이 될 수 있다'고 써준 글귀가 즉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말은 교직생활을 하며 처음 '그냥'을 만났을 때부터 마련한 모범답안이다. '그냥'은 좋아하는 까닭은 되지만 싫어하는 까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이 자꾸만 이유를 따지게 만든다. 아니 이유를 따지는 성격이 그런 생각을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왜 그냥을 싫어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부단히 따져본 결과물일 테니까 말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품위를 유지하려면 아무튼 '그냥'은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다짐했다. 앞으로도 내 교실에서 그냥은 허용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