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 학교 진학설명회를 다녀왔다. 일찌감치 내신 공부는 포기한 터라 내용은 남의 아들들 이야기같았다. 논술 전형이나 수능으로 빨리 틀어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해 준 시간이라면 의미있었다. 도대체 이 나라의 교육은 한두 번의 실패가 누적되고 그것이 학생의 발목을 잡는 시스템이구나, 우리 때도 그랬던가? 학창시절을 그저 누리기는 어려운 게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이다.
대충대충 듣기로 했는데, 처음 학년 부장 교사의 안내가 귀에 걸렸다. 학교장추천으로 가는 학생의 추천에 교사들이 고려할 수 있는 것은 학폭과 벌점이라는 안내. 학폭이야 그렇다쳐도 벌점은 원래 생기부에 기록되지 않는다고 입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지각, 교복 미착용, 잡담 등등의 수많은 벌점과 기분대로 주는 '교사 지시에 불응'이라는 항목들이 떠올랐다. 특히 반 아이의 담임은 벌점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 같던데 그럼 교사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그 안내의 끝에 당부의 말로 아이들이 태블릿을 압수당할 때가 있는데, 그건 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해서 그렇다는 말이었다. 초등학생도 수시로 그런데, 그걸 고등은 모두 벌점화한단다. 아! 우리 아들 좀 걱정되는데?
집에 와서 이날 들었던 것 중에 벌점 이야기는 아들과 나누지 않았다. 의도가 있었다기 보다는 깜빡한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모처럼 벌점 확인을 하는데 바로 어제 떡하니 태블릿 항목으로 벌점을 3점이나 받았다. 아, 왜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거야? 내가 그날 말을 했더라면 좀 달랐을까? 잠시 자책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말을 하면 좋았겠지만 내가 말을 안 한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지도는 교사의 몫이고, 지도에 따르는 것은 학생의 몫이지 학교 생활마저 부모의 몫이라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아들의 성장을 옆에서 같이 하며 내 속이 문드러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 역시 어느 정도는 짐작하겠지만 실제로 내 가슴이 얼마나 타들어가고 문드러졌는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티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보기 보다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다. 그나마 그걸 감사해하니 다행이다. 세상에 이런 엄마는 없는 것 같다며 효도하겠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대체 너의 효도란 무엇이냐 말이다. 학교 생활을 문제 없이 하고 학업에 전념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효도는 너의 효도에 없단 말이냐? 오늘은 좀 화가 나면서, 엄마도 힘이 든다고 막 쏘아붙일까 혼자 내내 궁리를 했다. 하지만 그러진 못할 것이다. 그런다고 달라질 애 같으면 스스로 깨달았겠지. 그런데 좀 억울하다. 엄마는 힘이 안 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자기 할 일을 잘 해내고, 알콜이나 약물에 의존하지도 않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니 자기 정도는 크게 힘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얘야 그건 절대 아니란다, 현재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걱정이 너라고 정말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을 때가 많단다. 하지만 당연히 그러진 못한다. 그건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될 테고 그걸 감당하기엔 아직 어리니까.(아니 철 좀 들라고 어리지 않다고 또 속으로 소리쳐보지만 정신연령이 멀었다.)
아들과 더불어 내 걱정 세계의 쌍두마차인 친정엄마가 부탁한 '롯데' 자일리톨 껌을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으며 작은 아들이 좋아하는 토레타도 같이 담는다. 큰 아들이 좋아하는 제로 콜라는 담았다가 뺐다. 이렇게 소심하게나마 복수하련다. 왜 지껀 없냐고 물으면 내 맘이라고 대답하련다! 네가 엄마를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