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말] 시계 고장난 거 아니에요?

by 횸흄

2025년 2월 11일, 춘천지방법원의 한 판결은 교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설마했던 일이 정말 벌어진 것이다. 이날 내려진 현장학습 인솔 교사에 대한 유죄 판결은 '안전 사고의 책임을 과연 교사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항인가'를 다시 공론 대상에 올렸고, 그 결과 학교에서 향후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입장 결정을 앞당겼다. 작년 '노란 버스 법안'의 대소동 후에도 유지되어 왔던 현장학습인데, 교사가 뒤를 몇 번 돌아봤는가에 따라 인솔의 책임이 달라진다는 어이없는 판결은 더이상 현장학습 인솔에 교사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현장학습시 아이들이 다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교사는 없다. 이를 무릅쓰고 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외부 활동을 해왔다. 당연하게도 교사 한 사람이 인솔하기엔 벅찰 뿐더러 만에 하나 사고가 났을 때 책임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어 온 것이었다. 30명을 이동할 때마다 세고 찾고 저마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원더우먼급 에너지가 필요한데, 언제 당할 지도 모르는 사고의 확률까지 어떻게 모두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교직 사회에서는 체험학습이 빈번한 이 시대에 굳이 단체 현장체험학습이 필요한가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쭉 해오던 일을 갑작스레 없애기가 어렵고, 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한 학기 하루의 기쁨을 위해 감수하고 다녀오곤 했다. 그런데, 올해 초의 이 판결이 교사 및 학교 관계자들의 결심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현장체험학습 안 갈 결심.


이에 아이들의 실망감은 당연하다. 학부모들은 체감상 반반이다. 현장체험학습이 학부모에게도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자주 발생하는 사고 소식에 하루종일 조마조마하며 보내는 부모도 있고, 생각보다 비싼 활동비가 부담스러운 부모도 있고, 갔다 오면 학원도 못 보내서 불만인 학부모도 있고, 아이처럼 함께 즐거워하는 학부모도 있다. 그래서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졌을 때, 나 역시도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모두가 한 마음이다. "누가 나의 소중한 현장체험학습을 없앤 거야!!!!" 이 속상함에 공감하며 우리 학교에서는 '책가방 없는 날'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교사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마 모두가 반겼을 것이다. 현장체험학습 대신 학교 안에서 현장체험학습 하듯 즐겁게 보내는 날이니까 학원에 늦을 염려도 없고, 공부할 걱정도 없다. 교사들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것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해 줘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학교는 학기당 한 번을 했고 어제는 그 두번째 날이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일단 2시간은 학급 수대로 진로 강사를 초빙해 한 아이당 원하는 두 가지 직업 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어진 두 시간은 선생님들마다 하나의 부스를 운영하여 아이들이 미션 수행하듯이 조별로 다니며 부스 활동을 했다. 1학기 때의 피구대회를 하고 나서 과열된 승부욕에 문제의식을 갖고 회의한 끝에 승부보다는 참여에 의미를 두는 활동을 계획했다. 긴줄넘기, 오리걸음 경주, 탁구공 옮기기, 점보스태킹, 딱지치기, 공 다리 사이에 끼우고 달리기, 알까기 등 총 9개의 부스가 운영되었으니 아이들은 어린이날 저리가라 즐거웠다. 게다가 점심 먹고 나니 과자도 나눠주고, 과자 먹으면서 영상 시청도 하는 날이었다. 나는 긴줄넘기 경기를 진행했는데, 2시간 내내 안내하고 진행하느라 오늘은 목이 다 갈라져서 수업하는데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영상을 볼 땐 나도 같이 녹초가 되었다. 우리 반은 마지막 시간에 EBS 원작동화 중 진로와 관련된 영상을 보았는데 수업 종료 5분 전에 영상이 끝났다. 5분은 정리를 해야하니 아주 딱 좋은 종료 시간이었다.


-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과자 먹던 것을 잘 정리해서 가방을 싸고 집에 갈 준비를 합시다.

- 선생님, 뭐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뭘까? 사실, 여러 번 하교 시간을 착각하여 내보낸 아이들 다시 들여온 적도 있고 시간을 넘겨 열강한 적도 있어서 내가 뭘 잘못 알았다는 말에 일단 귀가 팔랑거렸다. 나는 충분히 뭘 잘못 알 수 있는 사람이다.


- 어? 뭐?

- 저희 오늘 6교시 아니에요? 왜 오늘은 벌써 끝났어요?

- 아, 시계 고장난 것 같아요. 지금 1교시 아니에요?

- 저희 오늘 수업 했던가요?

- 집에 가기 싫어요.


아, 이런 뜻이었구나!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시간 문제에 취약했던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능청이 이어져 무안할 새도 없이 장단에 맞췄다.


- 이런 날은 학교가 좋은가봐?

- 선생님, 집에 전화해 주세요. 오늘 늦게 끝난다고요.

- 싫어 싫어. 얼른 가요들.


떠밀듯이 아이들을 내보내고 혼자 의자에 털썩 기대어 앉다가 눈을 뜨니 시계가 보인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한 말이 떠오른다. '시계가 고장난 것 같아요. 지금 1교시 아니에요?', '선생님 아직 1시간 더 남지 않았어요?' 평상시 같으면 고장난 시계도 제대로 볼 아이들인데, 얼마나 오늘 하루가 좋았으면 저럴까? 별다른 것도 없었는데 책가방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좋구나. 그래, 공부가 문제다! 그러게, 선생인 내가 생각해도 공부할 양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 학교는 너무 많이 가르친다. 나도 그게 불만이란다. 아, 오늘 종일 놀아서 또 수학진도가 늦어지고 있어! 오늘을 소중히 간직하고 힘들 때 하나씩 꺼내 먹자, 초콜릿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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