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아이들은 나날이 말이 많아지고 있다. 오래 전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봉숭아 학당이 떠오를 정도로 사춘기를 즈음한 나이인데도 서로 손을 뻗어 자기가 말할 기회를 얻고자 한다. 물론 발언권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말을 뱉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것을 표현력의 신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선생님들은 그보단 우려가 더 크다. 제가 발언하고 싶을 때 '저요 저요' 겨드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쳐올린 손이 남이 이야기할 때에도 뻗어만 있으니 남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는경향이 점점 거세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례함의 증거이지 표현력의 신장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자기가 발표하고 싶었는데 기회를 얻지 못할 때, 누가 말을 하건 말건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도 있다. 남이 이야기할 때 수시로 끼어드는 것을 비롯하여 요즘 학생들의 듣는 자세는 정말로 무례하다. 10번 손들어 7번을 발표하고도 3번을 발표 안 시켜준다고 엄마한테 일러서 전화를 받게 하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민원 전화의 고전이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말을 하라고만 독려했지 잘 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말이지 서로 말꼬투리 잡는 건 정말 질릴 정도이다. 사람이 2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는데, 말하는 입은 그 두배가 된 듯 교실은 소란함이 일상적이다. 교사로서 목 건강 보다도 귀 건강이 더 염려스럽다.
과거에도 물론 소란스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학교는 어느 정도 소란스러워야 활기차고 잘 굴러간다. 하지만 소란과 고함은 엄연하게 다르지 않은가? 교실이 실내라는 사실, 실내에선 어느 정도의 소음으로 지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냥 제 마음대로 살고 싶은대로 지내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오늘 내가 들은 말 중엔 '선생님 조용히 하세요!'였다. 하! 일상 생활에서 이런 애를 만나면 정말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은 말이었다. 선생님에게도 이럴진대 누구 하나 실수만 하면 그거 꼬투리 잡느라 신이 난다. 정색을 하고 지도를 하면 그나마 듣기는 하지만 행동이 고쳐지지는 않는다. 그게 참 신기하다. 대답은 하는데 행동 수정이 잘 되지 않는다. 대답만 하고 모면하려는 건가?
아이들의 말이 특히 나빠지는 건 피구 경기를 할 때인데, 그래서 요즘 선생님들은 피구 경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피구라는 경기가 공으로 누군가를 직접 때리는 경기라 힘이 세고 운동신경이 좋은 친구들이 마음을 곱게 먹지 않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구를 하면서도 쉬지 않는 입도 문제다. 과열된 경기 속에서 아이들의 고함은 끊어지지 않고 누군가를 험담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경력이 쌓일수록 피구 경기에 대한 고민이 짙어지는데 , 그 고민을 그려낸 듯한 그림책 [휘슬이 두번 울릴 때까지]를 보았을 때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피구 보다는 야구형이나 축구형, 배구형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피구가 좋은 모양이다.
오늘 모처럼 피구 경기를 해주기로 하면서도 긴장을 잔뜩하고 있는데, 역시나 우리 반 고함쟁이들은 내 귀 근처에서 소리를 얼마나 질러대는지 귀가 멀 지경이었다. 목청 하나는 끝내준다 싶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병원 진료를 권장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평소에 너무 쌓인 아이가 아닐까? 감정적으로도 불안함을 많이 보이던 아이였다. 깊은 시름하던 내 귀에 갑자기 한 아이의 목소리가 꽂혔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화를 내고 있었다.
"아이고 그걸 거기다 주면 어떻게 해, 이 착한 친구야!"
아니, 이런 신박한 화가 다 있다니! 전혀 비꼬는 투가 아니었다. 아이는 순간의 답답함을 표현한 것이다. 전에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아이도 학년 초엔 화가 많았던 아이였는데 스스로 교정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아마, 처음엔 의식적으로 나쁜 말 대신 이렇게 써야지 하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쓰던 것이 이젠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다. 듣는 '착한 친구'도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고 경기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그러다 잠시 후 또 한 마디가 들린다.
" 아 정말 참 행복하네~!"
경기가 잘 안 풀린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듣고 내 긴장이 확 풀어졌다. 하하하 웃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한 마디 보탰다.
"이 착한 친구들아 행복하게 하자! 화내지 말고 고함치지 말고!"
물론 고함치는 애는 이후로도 내내 내 귀에 고함을 질러댔고, 자기한테 공을 달라고 친구들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말은 오가지 않았다. 다른 반 이야기를 들으면 서로 탓하는 말도 많이 한다던데, 내 귀는 오늘도 조금 망가졌겠지만 그래도 착한 친구들이 행복하게 체육한 것 같기는 했다. 이 지점에서 간만에 이 나라의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갖게 된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전해주는 말 토씨 하나하나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아이의 성장을 막고 있겠지만,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성장에 단비같은 조언을 해 줄 것이다. 그들이나 나나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학교 생활에서의 아이들의 문제점을 모르는 바 아닐 것이고 함께 고민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은 저 착하고 행복한 아이들 덕분에 지금의 교육은 버텨가고 있다.
5분여 남은 시간에 자유 시간을 주니 티볼 배팅 연습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안전 때문에 나도 거기에 붙어 있는데, 거기에서 애들을 단속하는 중에 한 아이에게 "선생님 조용히 하세요!" 소리를 들은 거다. 평소에도 수시로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아이였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지긋이 바라보고 나니 더 하지는 않는다. 그 아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착한 녀석아, 참 행복~하다.'(번역 :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아 기가 막히다 내가 참.) 날카로운 날에 날카로운 날을 들이밀면 누구 하나는 다쳐야 끝이 난다만, 날카로운 말에 뜻밖의 부드러운 말을 들이밀면 최소한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저 착한 친구 덕분에 가르치지 않고 배웠기를 바라는 내 어리석은 마음을 돌아본다. 찬찬히 가르쳐야겠다. 물론, 나 혼자 가르친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싶지만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아이들에게 날 잡아서 [휘슬이 두번 울릴 때까지]나 한번 읽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