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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Oct 19. 2021

[건강 일기] 범인은 연필이었어!

손목이 아픈 지 한참 되었다. 큰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아팠던 것을 그냥 참고 견디다보니 그 아이가 열네 살이 된 지금은 젓가락질도 몇 번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큰 병원에 가자니 겁이 나기도 하고 매일 마우스를 쥐고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업무에 지장을 줄까 싶어 일단은 내년으로 미뤄두며 정형외과와 한의원에서 치료 중이지만 큰 도움이 못 되었다. 그저 아끼라는 말에 아끼려고 노력만 했을 뿐이다. 그러다 불현듯 '이거 내가 너무 아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그래서 요가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여 주 3회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의심이 옳았던 듯 통증이 줄어들고 있었다. 여전히 젓가락질 몇 번 하면 손목을 움켜쥐어야 하지만 뭔가 단단한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한 열흘을 보내고 난 지난 주 목요일부터는 매일같이 착용하던 손목보호대도 없이 일상 생활을 했다. 별 통증을 느끼지 못했는데 일요일에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 어느 때보다 손목이 너무 아팠다. 긴급히 손목보호대를 찾아 착용하고 오른손과 오른팔을 파스로 도배를 하고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파스의 화끈거림에 통증이 가려진다는 느낌만 있었다. 무슨 일이지?


지난 주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빌렸는데 너무 궁금한 곳을 긁어주는 책이라 책을 읽으며 메모로 정리를 했다. 쓰면서도 볼펜이 좀 뻑뻑하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볼펜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썼다. 뻑뻑한 볼펜은 그 볼펜대로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필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느낌을 오랜만에 느껴서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목이 아프고 나서는 힘을 덜 써도 진하게 써지는  모나미 플러스펜만 주로 쓰는 지라 이 낯선 필기구의 감각이 진짜로 너무 반가웠다. 그런 낭만은 아픈 사람에겐 독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은 노트 5장을 쓴 그게 화근인 것 같다. 여느 때보다 휴대폰을 더 많이 한 것도 아니요, 집안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요, 무거운 짐을 든 것도 아니요, 다친 것도 아니니 원인은 그게 분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5장을 짧은 시간에 다 쓴 건 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든다만 하던 일을 멈추는 게 얼마나 어렵던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런 정신은 칭찬받을 만 하지만 아픈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간 내 손목의 원인이 휴대폰과 컴퓨터일 것이라고 내심 원인을 잡고 있었는데 연필질이었구나! 직업 특성 상 오른손으로 뭔가를 끊임없이 쓰게 되지만 개인적인 성향상으로도 손으로 쓰는 일을 너무 좋아해 21세기에도 부지런히 편지를 주고받고 일기를 써왔다. 지금보니 내 손목은 컴퓨터가 아니라 연필이 고장낸 것이구나... 부디 그것이 원인은 아니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어버려 마음이 좀 아프다. 쓰지 말아야 한다니!


아침에 출근을 하기 전 오른 팔에 파스를 휘감고 긴 옷으로 감추었는데 그 화끈거림이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득 오래 전 유행하던 말이 생각났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가 "어디서 파스 냄새 안 나요?"로, "내 맘이 불타고 있어요."가 "내 몸에 붙이고 있어요."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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