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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Jan 19. 2022

[영화일기]1일1영화가 위태롭다.

독서광 이전의 나는 분명 영화광이었다. 고3 때에도 밤잠이 많아 공부를 하며 밤늦게 깨어 있는 경우는 없었지만, 주말의 영화는 챙겨봤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아이를 키우며 끊어졌다. 2시간마다 깨는 아이 곁에서 2시간이 넘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치였다. 그렇게 나는 영화와 멀어졌다. 


그러다 몇 주 전 독서 모임의 책이 영화 관련 책이었고, 마침 작가가 오래 전에 쓴 글들을 모은 책이라 그 책에 수록된 많은 영화들은 내가 영화광이던 시절의 영화였기에 나는 마치 어제까지 영화를 보던 사람처럼 책을 읽고 이야기에 참여했다. 그것이 신호탄이었을까? 이제 아이들도 혼자 뭘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다시 영화를 볼까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최근 재밌게 보는 예능 <방구석 1열>여 옆에서 부채질을 하니 그렇게 새해 목표를 '한달 간 1일 1영화'로 잡고 실천 중이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다이어리에 보고 싶은 영화의 목록을 10가지 정도 적었는데 1월 19일 현재 그중에는 한 편도 보지 못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낮에는 이렇게 글을 쓰거나 약속을 잡아 외출을 하느라 보지 못하고 아이가 오면 잘 때까지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꼼수를 쓴 것이 아이와 함께 볼 영화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애초의 나의 계획과는 많이 동떨어졌으나 융통성이라고 이름붙이기로 했다. 많은 영화를 본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나를 다시 세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본 영화 중에는 <샬롯의 거미줄>도 있고 <알라딘>도 있으니 절반 이상은 만족한다. 물론, 졸며 본 영화도 있다. 시간이 정 나지 않을 때엔 단편 영화를 봤다. 덕분에 요즘 핫 하다는 연상호 감독의 <창>도 보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도 봤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내 취향의 영화로 아이와 별개로 시간을 내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아이가 잘 때까지 기다리거나 영화를 나누어 봐야 하는 불편은 감수해야 했다. 

드디어 다이어리에 적어둔 영화 목록 중 한 작품을 보았다. 원래는 <무간도> 1편만 보려고 했는데 3편이 궁금해서 연 이틀을 <무간도>에 빠져 살았다. 아직도 영화 속에 대사가 떠오른다. 물론 광둥어라 알아듣진 못했지만 1편과 3편에서 진영인(양조위)와 양금영(여명)의 유건명(유덕화)에게 내뱉은 말이 마치처가 된 양 남아 있다. "对不起, 我是警察(미안하지만, 난 경찰이야)" 이에 나도 경찰이다. 너희 대신 열심히 일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왜 기회를 주지 않느냐며 절규하는 모습을 보며 유덕화의 삶이 말 그대로 무간지옥이었구나 싶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제는 천재 작가 토머스 울프와 그를 발굴한 시대의 편집자 맥스웰 파커스의 이야기를 다룬 <지니어스>도 봤고 며칠 전엔 원작 소설을 읽기 전 <테레즈 데케루>도 봤으니 이것 참 순조로운 '1일 1영화'가 아닌가?


아니다. 전혀 순조롭지 않다. <무간도>까지는 그래도 그날 보기 시작해서 그날 마무리를 지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시작은 그날 하고 마무리를 뒷날 하는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놓고 시작하는 날이 기준이라며 나 자신과 타협했다. 급기야 어제는 밤 12시가 될 때까지 전날 시작한 <지니어스>를 보고, 12시 직전에 부랴부랴 <디 아워스>를 시작했다. 정말 시작만 하고 잠이 들었다. 누구를 위한 몸부림인가? 사실 안 지켜도 그만인데, 그래도 한 달이 목표니 지키고 싶었다. 시간을 정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북클럽에 참여하며, 1일 1영화도 실천해야 하니 사실 시간이 무척 모자라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에는 모두 하기 어려운 일들이라 더더욱 시간이 부족하다. 쫓기듯 한다고 봐도 무방한데, 중요한 건 그 시간이 즐겁다는 것이다. 마치 토마스 울프가 맥스를 만나 행복했던 그 시절마냥. 물론 그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오늘은 반드시 <디 아워스>를 끝내고 단편 영화든 어린이 영화든 2편을 마무리 지어보고자 한다. 19일차에 무너질 수는 없으니 다시 다잡아야겠다.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지만 유건명처럼 남을 속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맥스 퍼커슨같은 조력자도 없으니 혼자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주변으로 퍼져있는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쓰는 것이다. '1일 1영화'로 "야, 너도 영화 볼 수 있어."가 내 안에 장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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