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뭐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Feb 06. 2022

[육아일기]여덟 살의 문장력

엄마에게 쓰는 쪽지편지

명절 연휴가 길고, 또 명절 이후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여 이틀을 보내지 않았더니 일주일 내내 아들과 딱 붙어 있었다. 24시간 밀착 육아! 그에 반해 남편은 집에 오면 휴식 모드로 나가나 들어오나 아이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 무척 자유로워 보였다. 그에 억울한 마음이 들어 오늘 밤엔 아빠한테 재워달라고 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자 우리 아들이 서운한 마음에 엄마 곁에서 쪽지 편지를 쓴다.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무슨 말을 쓰려나 예상이 되면서도 평소 이 아이의 언어 능력을 볼 때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재우라"는 명령어에 곧이 곧대로 반응하는 로봇 아빠는 애가 편지를 쓰든 말든 "들어가자!"만 반복적으로 말하길래 눈치로 일시정지를 시키고 아이가 편지를 다 쓸 때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일단 시작부터가 감동이다. 편지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기 전에 남편에게 이 쪽지의 시작이 무엇일 것 같냐고 물어보니 "엄마 재워주세요!"라고 했다. 그래, 로봇이 생각하는 한계다. 우리의 공감 천재 아들은 우선 엄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엄마 그동안 고마웠어요."라고. 어떻게 이런 도입을 생각할까? 그런 다음 약속을 정하자고 한다. 엄마가 쉬는 날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자기와 노는 날은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란다. 노는 날이라고 표현하지도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고 표현하니 더 사랑스럽다. 그래놓고선 엄마가 쉬는 날이 4일이고 자기랑 노는 날이 3일이니 쉬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을 강조한다. 일종의 생색내기이다. 그리고 마무리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가깝다." 세상아 기승전결이 완벽한 편지가 아닌가?


이 아이는 책을 즐겨 읽는 아이가 아니다. 큰 아이는 뭐하나 돌아보면 읽고 있고 쓰고 있었지만 이 아이는 뭐하나 돌아보면 "심심해!"만 외치는 아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문장력이 뛰어날 수가 있을까? 도입과 결말이 너무나 정서적으로 읽는 사람을 겨냥한다. 생각하고 쓴 걸까? 본능적으로 쓴 걸까? 편지는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는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그 목적에 맞게 쓰는 거지? 신통방통하다. 맞춤법은 다 틀려도 이 정도 문장력이면 대학 가도 되겠다. 우리 아들은 로맨티스트이자 센티멘탈 보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드일기] 중이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