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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Apr 26. 2022

[생각일기]포켓몬빵 처음 영접하면서

피카츄 망고컵케익

매일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가끔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하는 게임이 '포켓몬고'인 아들. 작년에 어린이집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배운 이후로 반일감정이 너무 강해서 포켓몬스터가 일본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한참 힘들었던 아이이다.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도 죄다 일본 작가다 보니 며칠 전에는 결국 일본을 싫어하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 그동안 너무 지나치게 잘 모르는 대상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걱정이 되었던지라 이런 마음은 반가웠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반일 감정 덕분에 포켓몬스터에 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는데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포켓몬 카드나 포켓몬 빵이 유행이라 그걸 탐내면 어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제발 카드나 빵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아들은 그것들에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 불쑥 "엄마 포켓몬 빵 먹어봤어?"라고 묻는 게 아닌가. "아니, 그거 구하기가 너무 어렵대."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근데 우리반 친구는 GS에서 봤대. 거기 포켓몬 스티커도 있대." 포켓몬 스티커는 예전에 포켓몬 에세이(포켓몬스터도 에세이를 쓰다니!)에 사은품으로 받은 게 몇 개 있어서 거기엔 할 말이 있었다. "스티커는 우리도 있잖아!" " 어! 그런데 하나씩 밖에 없어서 소중해." 거기까지 하고 아이는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씨알도 안 먹힐 것이라는 것은 엄마랑 일곱 해를 살면서 체득한 교육 효과이리라. 하지만 난 그날의 대화를 머릿속 한 구석에 저장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아이는 무언가를 원할 때 '해줘'가 아니라 '~가 참 멋있다.'라고 둘러 말하는 아이이다. 아이가 입밖에 냈다는 것 자체가 무척 갖고 싶었다는 뜻이고, 그것을 입밖에 내기 오래 전부터 이 아이 마음 속에는 부러움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걸 어찌 엄마인 내가 모를까?


오늘은 아이를 등교시키고 좀 다른 루트로 걸었다. 보통은 걷고 싶을 땐 고덕천을 걷거나 도서관쪽으로 가는데 오늘은 지하철역에 있는 스마트도서관에 다녀오기로 했다. 빌린 책이 와 있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보통 그곳에는 큰아들이나 남편 찬스를 쓰는데 한 시간 후에 시작할 고된 필라테스의 워밍업으로 딱 좋은 거리라 오늘 아침엔 직접 다녀오기로 했다. 왕복 30분 정도를 걸어오자니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아들 학교즈음에 이르러 편의점이 보였고 마침 사장님이 나와계셨다. 내 생활권이 아니라 그 편의점에는 거의 갈 일이 없는데 사장님의 몸에서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왠지 나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느낌이랄까? 에이 뭐 그럴 리 있겠어 하며 그냥 지나치다가 결국은 다시 발길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혹시 포켓몬 빵은 없겠죠?" 기대가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하나 들어왔어요! 딱 하나!" 나보다 더 기뻐하며 사장님이 말을 잇는다. 

"오랜만에 하나가 들어왔는데 나도 이건 처음 봐요. 너무 예쁘네. 누가 사갈까, 그 사람은 진짜 운이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사가시네!" 

"저도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사장님이 밖에 계시면서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아서 여쭤본 거예요."

"어머나! 정말요? 신기하네! 손님 오늘 운이 좋으니 뭐라도 하나 사봐야겠어요!"

일면식도 없는 분의 어떤 기운에 이끌려 귀하다는 포켓몬빵, 그중에서도 몇 번이나 사람들이 찾았다고 하는 피카츄 망고 컵케이크를 사올 수 있었다. 이로서 우리집에도 포켓몬빵을 영접하게 되었으니 그것을 품고 가는 동안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얼마나 기뻐할까? 하굣길에 귀에 속삭여줘야지, "엄마 포켓몬 빵 사뒀어!" 마음이 너무 설렜다. 

편의점 빵으로서는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3500원의 가격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고자 했던 마음도 어느 새 잊어버리고 나는 포켓몬 빵 하나에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꽃꽂이를 배우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꽃은 꽂는 게 아니라 보는 거라던 평소의 생각과 반하는 활동을 하면서 내 마음이 치유되는 효과를 느꼈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감탄하게 되었다. 평소에 옳다고 생각하던 것을 스스로 내던진 나의 행동에 어떤 합리화를 할 수 있을까? 합리화할 수는 없었다. 그저 아름다움이 옳고그름을 이겼다고 할 수밖에. 그런데 가끔은 아름다움이 옳은 것이 될 수 있는 거 아닐까? 슬슬 합리화를 시도해 본다. 그래, 포켓몬 빵을 사는 흐름에 한 번 쓸려가는 것이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낫지 않나? 존경하는 인물이 황희정승인 나로서는 정말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것만 알 뿐이다. 포켓몬빵 하나를 사면서 그냥 기쁘면 되지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야 하나 싶지만,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식탁 위의 꽃이 하나둘 시들어갈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사실 일본불매운동 여부보다 나는 그게 더 죄책감이 든다. 그 꽃들이 하루라도 더 피어있기를 바라며 물을 부지런히 폼에 채운다. 특히 꽃봉우리가 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아이가 시든다면 너무 미안할 것 같다. 가끔 사람은 옳지 않은 행동도 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책임을 지고자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도 나쁘진 않다만 매사에 그러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포켓몬빵을 사고 먹고 띠부실을 모았지만 죄책감보다는 그것을 보고 행복해할 아이의 얼굴에 더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내 이런 마음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사람은 걸어도 좋다만 난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나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심하게 태클을 걸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황희정승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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