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뭐든 일기

[생각일기]포켓몬빵 처음 영접하면서

피카츄 망고컵케익

by 횸흄

매일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가끔이긴 하지만 유일하게 하는 게임이 '포켓몬고'인 아들. 작년에 어린이집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배운 이후로 반일감정이 너무 강해서 포켓몬스터가 일본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한참 힘들었던 아이이다.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도 죄다 일본 작가다 보니 며칠 전에는 결국 일본을 싫어하는 것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 그동안 너무 지나치게 잘 모르는 대상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걱정이 되었던지라 이런 마음은 반가웠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반일 감정 덕분에 포켓몬스터에 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는데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포켓몬 카드나 포켓몬 빵이 유행이라 그걸 탐내면 어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제발 카드나 빵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아들은 그것들에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 불쑥 "엄마 포켓몬 빵 먹어봤어?"라고 묻는 게 아닌가. "아니, 그거 구하기가 너무 어렵대."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근데 우리반 친구는 GS에서 봤대. 거기 포켓몬 스티커도 있대." 포켓몬 스티커는 예전에 포켓몬 에세이(포켓몬스터도 에세이를 쓰다니!)에 사은품으로 받은 게 몇 개 있어서 거기엔 할 말이 있었다. "스티커는 우리도 있잖아!" " 어! 그런데 하나씩 밖에 없어서 소중해." 거기까지 하고 아이는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씨알도 안 먹힐 것이라는 것은 엄마랑 일곱 해를 살면서 체득한 교육 효과이리라. 하지만 난 그날의 대화를 머릿속 한 구석에 저장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아이는 무언가를 원할 때 '해줘'가 아니라 '~가 참 멋있다.'라고 둘러 말하는 아이이다. 아이가 입밖에 냈다는 것 자체가 무척 갖고 싶었다는 뜻이고, 그것을 입밖에 내기 오래 전부터 이 아이 마음 속에는 부러움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걸 어찌 엄마인 내가 모를까?


오늘은 아이를 등교시키고 좀 다른 루트로 걸었다. 보통은 걷고 싶을 땐 고덕천을 걷거나 도서관쪽으로 가는데 오늘은 지하철역에 있는 스마트도서관에 다녀오기로 했다. 빌린 책이 와 있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보통 그곳에는 큰아들이나 남편 찬스를 쓰는데 한 시간 후에 시작할 고된 필라테스의 워밍업으로 딱 좋은 거리라 오늘 아침엔 직접 다녀오기로 했다. 왕복 30분 정도를 걸어오자니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아들 학교즈음에 이르러 편의점이 보였고 마침 사장님이 나와계셨다. 내 생활권이 아니라 그 편의점에는 거의 갈 일이 없는데 사장님의 몸에서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왠지 나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느낌이랄까? 에이 뭐 그럴 리 있겠어 하며 그냥 지나치다가 결국은 다시 발길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혹시 포켓몬 빵은 없겠죠?" 기대가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하나 들어왔어요! 딱 하나!" 나보다 더 기뻐하며 사장님이 말을 잇는다.

"오랜만에 하나가 들어왔는데 나도 이건 처음 봐요. 너무 예쁘네. 누가 사갈까, 그 사람은 진짜 운이 좋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사가시네!"

"저도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사장님이 밖에 계시면서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아서 여쭤본 거예요."

"어머나! 정말요? 신기하네! 손님 오늘 운이 좋으니 뭐라도 하나 사봐야겠어요!"

일면식도 없는 분의 어떤 기운에 이끌려 귀하다는 포켓몬빵, 그중에서도 몇 번이나 사람들이 찾았다고 하는 피카츄 망고 컵케이크를 사올 수 있었다. 이로서 우리집에도 포켓몬빵을 영접하게 되었으니 그것을 품고 가는 동안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얼마나 기뻐할까? 하굣길에 귀에 속삭여줘야지, "엄마 포켓몬 빵 사뒀어!" 마음이 너무 설렜다.

포켓몬빵.PNG

편의점 빵으로서는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3500원의 가격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고자 했던 마음도 어느 새 잊어버리고 나는 포켓몬 빵 하나에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꽃꽂이를 배우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꽃은 꽂는 게 아니라 보는 거라던 평소의 생각과 반하는 활동을 하면서 내 마음이 치유되는 효과를 느꼈고 아름다움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감탄하게 되었다. 평소에 옳다고 생각하던 것을 스스로 내던진 나의 행동에 어떤 합리화를 할 수 있을까? 합리화할 수는 없었다. 그저 아름다움이 옳고그름을 이겼다고 할 수밖에. 그런데 가끔은 아름다움이 옳은 것이 될 수 있는 거 아닐까? 슬슬 합리화를 시도해 본다. 그래, 포켓몬 빵을 사는 흐름에 한 번 쓸려가는 것이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낫지 않나? 존경하는 인물이 황희정승인 나로서는 정말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것만 알 뿐이다. 포켓몬빵 하나를 사면서 그냥 기쁘면 되지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야 하나 싶지만,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식탁 위의 꽃이 하나둘 시들어갈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사실 일본불매운동 여부보다 나는 그게 더 죄책감이 든다. 그 꽃들이 하루라도 더 피어있기를 바라며 물을 부지런히 폼에 채운다. 특히 꽃봉우리가 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아이가 시든다면 너무 미안할 것 같다. 가끔 사람은 옳지 않은 행동도 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책임을 지고자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도 나쁘진 않다만 매사에 그러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포켓몬빵을 사고 먹고 띠부실을 모았지만 죄책감보다는 그것을 보고 행복해할 아이의 얼굴에 더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내 이런 마음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사람은 걸어도 좋다만 난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나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심하게 태클을 걸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황희정승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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