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림책테라피 수업을 두 개 듣고 있다. 하나는 5월에만, 하나는 6월까지. 그림책 테라피 자격을 위한 수업이 아니라 내담자로서 테라피를 받는 수업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에 두 수업에서 만난 그림책 두 권의 결이 닮아 '나'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뜩이나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은데 뭘 더 나를 생각하려나 싶지만 내 안의 나는 정리되지 않은 채 함께 뒹굴고 있으니 그것을 좀 정돈했다고나 할까?
앞선 수업에선 [내 안에는 사자가 있어, 너는?](가브리엘레 클리마 글, 자코모 아그넬로 모디카 그림, 그린북, 2020)를 읽었는데 그 안에서 발견한 나는 '나비'였다. 다음 생이 있다면 돌이나 나비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림책 속에서 발견한 나비의 성향도 나를 많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큰 아이도 나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좀더 남들 눈에 띄는 호랑나비가 하람이라면, 나는 좀 색다른 물포나비로 정한 참이다. 자유롭고 싶어하고 간섭을 싫어하는 예민한 그러나 약하지 않은 우리 모자의 모습이 두 마리 나비를 그리며 자꾸만 떠올랐다. 우리는 그렇게 같아서 투닥이고 또 이해하는구나 싶었다. 채람이는 책에서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고 도리어 평소 채람이가 말하 듯 다람쥐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귀엽고 부지런하고 계획적이며 적당히 친근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모습이 떠올랐다. 남편은 그림책에서 말하는 원숭이의 모습에 가까웠는데 그래서 나나 하람이랑은 잘 맞지 않고 채람이가 더 잘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림책 하나로 우리 가족을 좀더 이해하게 되었다. 이게 그림책 테라피구나! 이 책 하나면 이야기도 나누고 그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수업에선 [나는요.](김희경, 여유당, 2019)를 읽으며 시작했다. 강사님은 오랜 경력의 독서치료사셨기에 그림책은 그저 우리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었지만 나는 이 책이 무척 맘에 들었다. '나는요' 다음에 붙은 쉽표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수줍게 말하는 동물들(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안아주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을 좋아하는 나무늘보나, 멍때리는 표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토끼의 모습은 평소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지적받았을 행동이라 그것을 말하기까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까? 이 모든 모습이 나라고 말하며 책은 이야기를 마무리짓지만 나는 그런 결말이 맘에 들지는 않는다. 그중 몇 개의 모습이 있는 거라는 걸 느끼면 되는데 굳이 마지막에 그렇게 "모두 나예요."라고 확정하는 건 앞의 무수한 사랑스러움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앞장에 아이가 모든 동물들의 한 가운데에서 편안하게 미소지으며 그중 코뿔소와 안고 있는 모습은 정말 좋았다. 아마 이 아이의 마음엔 코뿔소의 마음이 가장 크게 자리한 모양이다. 화를 잘 못 내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는.
전에 대만에 가서 사온 [猜一猜 我是誰](賴馬,河北敎育出版社)는 수수께끼를 하듯 '내'가 누구인지 찾아내는 그림책이다. 아이는 이 책을 당연히 읽지 못하지만 나와 함께 읽으며 자주 '我是誰?'를 말했다. 내가 누구냐는 질문, 그것은 단순한 수수께기 놀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똥을 어떻게 누고, 뭘 하고 노는지부터 어떤 것을 어려워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모두 포함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두 권의 그림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왜 그렇게 아이가 '我是誰?'라고 물을 때마다 얼굴을 빤히 쳐다보게 되었는지 이제야 내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래, 엄마는 네가 그렇게 너를 찾아가길 바라고 네가 너를 찾아가는 것을 돕고 싶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