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에서 AF(Artficial Friend)인 클라라가 자신의 주인인 조시의 마음을 더 알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할 때 조시의 아빠 폴이 클라라에게 말하기를, 마음은 나란히 있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조언하는 장면이 있다. 뭔가 대단한 힘을 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툭툭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에서 나는 이 소설의 모든 인물 중에 폴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당신은 정말 인간적인 인간이군요.
오늘 아들 친구 엄마들과 함께 하는 그림책 낭독 모임 다섯번째 시간을 가졌고 이번 주제는 '마음'이었다. 최근 그림책 테라피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어 정한 주제였는데 우리가 서로에게 마음에 관한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 시간이야말로 치유의 시간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늘 그렇듯 시작은 내가 먼저 주제에 맞는 그림책을 몇 권 읽어주는데 그 첫번째 책은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림을 그리고 김희경이 글을 쓴 [마음의 집]이다. 이 책 이전에도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을 좋아했지만 내 기준에서 이 책은 단연 최고의 책이다.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의 합이 너무 잘 맞아 글과 그림이 찰떡같이 잘 어울린 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음에 대하여 너무 정확하게 표현한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본 그날처럼 오늘 회원들의 표정에도 내내 공감이 가득했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때로는 아이의 마음을 떠올렸으리라. 이 그림책을 읽으며 폴의 말이 떠올랐다. 마음은 단순하지 않다는 진리.
이현민의 그림책 [토라지는 가족]과 몰리 뱅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화나면], 코리 도어펠드의 [가만히 들어주었어]를 읽으면서는 마음의 회복력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토라지건 화가 나건 속이 상하건 그 마음이 다시 평상시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아이가 그럴 때 우리는 정말 그 시간을 가만히 기다려줄 수 있는 엄마인가 머리를 갸웃하게 된다. 마음을 회복하고 돌아온 아이를 굳이 불러 세워 '자, 아까 왜 그랬는지 우리 다시 한 번 얘기해보자.'며 회복된 마음을 다시 무너뜨리는 어른은 아닌지,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아이가 마음을 들여다 볼 시간도 주지 않고 내 스타일대로 종용하는 어른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 안에 꼭꼭 숨어있어 잘 모르기도 하고, 그럴 땐 그 마음을 혼자 탐색하고 그 마음이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숨은 마음을 찾는 술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가만히 곁에서 어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아이가 도움의 손길을 원할 때 그 자리에서 가만히 들어주면 된다. 때로는 나무처럼, 때로는 토끼처럼, 때로는 호수처럼 가만히 있다가 아이가 회복하고 돌아올 때 포근한 집의 모습으로 맞아주면 되는데 그간 나는 닭처럼, 얄미운 친구처럼, 회초리처럼 아이의 마음을 더 숨어버리게 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회복하는 데에 서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되었다고 모두 어른이 된 건 아니니까.
한 시간 남짓 그림책을 읽는 이 시간, 특히 오늘처럼 마음을 헤아리는 그림책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지면서 오르는 한뼘 어른력이 높아졌으리라. 너무 자신을 꾸짖지 않기로 한다. 동시에 상대의 마음도 꾸짖지 않기로 한다. 그게 오늘 배운 하나의 가르침이다. 마음은 단순하지 않고, 이 숨바꼭질은 자신만이 술래가 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