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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Jun 24. 2022

[중드일기] 동가? 부유란? 해란주? -독보천하

사극을 볼 때는 시청 태도를 정해놓을 필요가 있다. 그저 재미로 볼 것인가, 역사를 알기 위한 것인가 정도라도. 그저 재미로 본다면 세종대왕이 전쟁에 나가고, 연산군이 한글을 창제한다해도 재미만 있으면 그뿐이지만 역사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본다면 그런 설정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저렇게 대단히 엉망진창인 경우는 환타지로 치부할 수 있으니 속아넘어가지 않지만 오묘하게 설정을 하여 드라마가 정사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창작을 한 것인지 알기 어려운 때도 있다. 거짓말 사이사이에 진실을 넣으면 속아넘어가듯이 말이다. 나는 가상 배경이 아닌 이상은 알고 있는 지식과 드라마를 비교하면서 보는 편이라 사실 중드를 보는 내내 머릿속이 꽤나 바쁘다. 


최근 보는 [독보천하]는 누르하치의 대금(건주여진에서 시작하여)이 대청이 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인데 나라를 세우는 과정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만(건국드라마라 하기엔 전쟁씬이 너무 조악하다.)주내용은 동가라는 여인을 누르하치와 그의 아들들인 추연, 다이샨, 홍타이지가 모조리 사랑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질투와 사랑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동가라는 여인은 누구인가?

동가는 실존 인물이다. 누르하치의 건주여진과 힘을 겨루던 해서여진(예허여진)의 딸로 대단히 뛰어난 미모를 해서여진에서 정략적으로 이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서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 예언을 받았다고 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녀 때문에 예허여진은 균열이 생기고 그 틈에 누르하치가 여진을 통일하게 되니 누르하치는 그녀의 덕을 본 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건주여진쪽과는 크게 인연이 있지 않은데 드라마에서는 이 동가를 누르하치의 여인으로 설정했다. 누르하치가 호시탐탐 복진(아내)로 삼고자 했지만 도도하게 거부하는 여인이 바로 동가인데, 한집에서 오래 살다보니 늙은 누르하치뿐만 아니라 그녀와 동년배인 누르하치의 장남 추연과 다이샨도 그녈 사랑하게 된다. 알려진 역사에서 추연은 능력이 있었지만 오만해서 실수를 한 탓에 죽고 말았는데 드라마에서는 그 오만함도 동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다이샨은 누르하치의 부인들과의 염문설이 많았다고 하는데 드라마에선 동가에 대한 사랑이 지고지순할 뿐이다. 역사서에서 훗날 순치제를 섭정하는 도르곤의 친모인 아바하이와 염문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도 그 염문설을 안고 아바하이만 누르하치와 순장되고 다이샨은 정치적으로 잘 살아남은 것으로 되어있다. 드라마에서도 오묘하게 다이샨이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고 홍타이지를 황위에 올리는 역할을 하는 모습이 역사와 비슷해서 자칫 역사적으로도 그가 순정남에 인자한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실제 역사와는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훗날 동가는 홍타이지와 사랑을 약속하고 신분을 바꿔 그녀의 소복진(아버지가 정해주지 않은, 사랑으로 결합한 아내)이 되어 홍타이지가 황제가 되어서도 함께 한다. 훗날 순치제의 친모이지자 강희제의 조모가 되는 효장황후가 홍타이지의 측복진 봄부타이로 나오는데 실제 역사에선 그녀의 고모와 언니도 홍타이지의 아내였다고 하니 그럼 동가가 이번엔 봄부타이의 언니가 되는 건가? 그렇다 동가는 이름은 동가이지만 홍타이지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해란주이기도 한 셈이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정말 나중에 한 번 더 죽고 얻는 삶에서 해란주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가가 부유란이 되었다가 해란주가 되는 설정인데 <삼생삼세십리도화>도 울고갈 삼생이다. 앞서 말한 갈대는 홍타이지의 장남 후거를 낳은 대복진인데 이들의 서열관계도 역사와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일단 동가만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동가는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하였지만 그 인물들을 섞어서 만든 가상인물이 되는 셈이다. 드라마 초반에는 예허여진의 딸인 동가로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역을 맡고 있고 후반부엔 홍타이지가 가장 사랑했던 몽골 코르친 부족의 여인 해란주인 셈이다. 드라마에선 동가와 해란주 사이에 부유란을 하나 슬쩍 넣어 윤활유로 사용한 모양이다. 


재미로 보자면, 얼굴에 화상 입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얼굴에 점 하나 찍고 구은재가 민소희가 되어 복수하는 <아내의 유혹> 보듯이 보면 되지만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보면 생각할 것이 그만큼 많아진다. 대신 그렇게 본 드라마는 소모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단 오늘 회차에서 본 것은 아바하이가 순장되는 사건인데, 살아있는 사람을 굳이 죽은 사람 곁으로 보내다니 그것은 '순장 문화'가 아니라 '순장 살인'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그러니 훗날 도르곤이 복수심을 기르며 권력자가 될 마음을 품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단 아바하이는 순장되었고 아직 도르곤은 힘이 없고 홍타이지는 황제가 되었으며 동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보여준다. 책에서 본 홍타이지의 업적이 어떻게 그려질지도 궁금하고 드라마가 어떻게 진실과 창작을 버무릴지도 궁금하다. <독보천하>는 비교적 잘 버무린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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