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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Jul 12. 2022

[여행일기] 해수욕장은 개장 전에

어릴 때부터 사람 많은 곳을 힘들어했다. 지금도 왜 줄 서서 기다리며 식당에 가는지 이해할 수 없고, 주말에 사람 많은 곳을 찾아가는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이런 성향은 좀더 강화된 듯 하다. 물론 많은 곳을 싫어하는 것이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쇼핑몰에 손님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무척 민망한 노릇이고, 바다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좀 무서운 분위기일 듯 하다. 


그래서 성수기 때 휴가지의 풍경을 잘 알지 못한다. 성수기 때에는 늘 집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므로, 몇 년 전에 아들과 둘이 가본 해운대 해수욕장의 몇 시간이 내가 기억하는 성수기 해변의 유일한 풍경이다. 그때도 내 눈엔 내 아이만 보여서 사실 주변 풍경을 잘은 기억하지 못한다. 비키니를 입고 저렇게 도로를 활보하는 곳이 휴가지의 맛이구나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옆 돗자리에서 성추행 문제로 경찰이 출동한 것은 내가 성수기 여행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번 휴가도 역시 성수기가 오기 전에 떠났다. 7월 9일에 개장하는 속초 해수욕장을 7월 7일과 8일에 간 것이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었고 돗자리를 펴고 이동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사진을 찍으면 렌즈 안에 다른 사람이 잡히지 않게 충분히 찍을 수 있는 그 정도의 밀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이틀을 서너시간씩 놀다보니 더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지금 이 지상천국같은 여유로움이야말로 휴가라는 말에 가장 어울릴 텐데 왜 사람들은 해수욕장 개장만을 기다리는 걸까?


휴가를 즐기는 방식에 따라 열기를 좋아하는 사람, 온기를 좋아하는 사람, 냉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부딪히며 열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적당한 밀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경우엔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해수욕장이 개장 중일 때에는 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장 전에는 온기를, 폐장 후에는 냉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겠다는 나름의 분류를 해 볼 수 있다. 적당한 거리감에서 여백을 즐기는 중에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으니 어떤 사람들이 보면 참 쓸데없다 싶지만 내겐 무척 재밌는 과정이었다. 예전에 폐장 후의 해수욕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날씨나 인구 밀도는 개장 전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 개장 전에는 해수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폐장 후에는 거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달까? 그때 느낀 쓸쓸함이 아이와 함께 느끼기에 좀 불편했다. 아이와 가기엔 개장 후보다는 차라리 개장 중인 때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나 혼자였다면 좀 무섭긴 해도 그 쓸쓸한 느낌을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이번에 휴가를 즐기면서 역시 해수욕장은 개장 직전에 오는 것이 내겐 딱 좋구나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먼 거리에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감을 난 무척 좋아하는구나 하는 마음. 더구나 다음 날 아침 숙소를 떠나며 바라본 개장날 해수욕장의 풍경에 도리질을 치고 안도감을 느꼈으니 아마 다음에도 나는 개장 직전의 해수욕장을 찾으리라. 이건 나이듦의 증거일 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물어보면 사람들이 많아서 친구들도 만들고 사건들이 자잘하게 많이 만들어지는 성수기의 열기를 좋아할 지도 모른다. 그래, 해수욕장의 붐비는 풍경을 보여주는 뉴스를 보면 온통 젊은이들의 에너지 뿐이더라. 나는 이렇게 저물어 가는 걸까?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부터도 이런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다가 갑자기 70대에 비키니 입고 성수기에 해수욕장을 활보하는 건 아닐까? 그것도 참 좋겠다만 일단은 개장 전에 느끼는 따뜻하고 여유로움이 딱 좋은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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