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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Jul 19. 2022

[독서일기] 책따라 이동하는 하루

어제 무심코 연 '당근마켓 앱'에 '도서나눔' 글이 올라왔고 우연히 그 책들 속에 아들의 다음 북클럽 책인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가 포함되어 있어 나눔을 받기 위해 오늘 아침 집을 나섰다. 그 한 권만 받으러 가기엔 번거로움이 더 커 재밌어 보이는 [수학 시트콤}이라는 책도 함께 받기로 했는데 낯설어보였던 위치는 막상 도착해서 보니 내가 늘 가던 도서관의 맞은 편 뒷길이었고, 남편이 자주 가던 쇼핑몰의 근처였다. 또 하나의 통로를 안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커피와 책을 교환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을 하나 더 들르기로 동선을 짠 터라 짐이 꽤 묵직했다.


집 근처(라고 하기엔 걸어서 30분 거리) 도서관이 하나 생겼는데 그간 걸음을 하지 않다 지난 주에 오전의 한가로움에 반해 자주 다니기로 한 터라 짐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책 2권을 반납하고 책 2권을 빌렸다. 작은 아들의 요청대로 '흔한남매 책'을 하나 빌리고 큰 아들의 논술학원 책 [달과 6펜스]를 빌렸다. 새로 생긴 도서관이라 책의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달과 6펜스]는 내게 좀 각별한 책이다. 읍소재지에 살긴 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 동네엔 공립도서관이 생겼다. 수줍음이 많고 남에게 뭘 묻기를 어려워하는 성격이었던 지라 대출증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매일 그곳에 가서 책을 나눠 읽고 오곤 했는데 그 첫 책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였다. 양장본 세계문학전집이 가득 꽂힌 곳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아마 당시 학교에 서 배운 고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 나는 세계문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그렇게 몇날을 읽은 [달과 6펜스]에 대한 내 마음은 좀 복잡했다. 뿌듯함과 매력 그리고 불편함을 모두 느낀 것 같다. 그 다음에 읽은 [위대한 유산]에 반해버린 것과는 무척 달랐다. 이후에 읽은 서머싯 몸의 [서태후]를 생각하자면 작가가 가진 여성에 대한 시선이 무의식중에도 썩 맘에 들지 않았던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인생에 더이상의 서머싯 몸을 또 읽을까 싶은 참인데 중학생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니 내 마음이 다시 복잡해진다. 일단 다시 읽어봐야겠다. 여러 차례 말하지만 내 기억력은 형편없으므로 내가 작품을 오해하고 살았던 지도 모르니까.


책 2권을 나눔 받고 2권을 빌리고선 며칠 전 채 읽지 못한 채 참여했던 독서모임의 책 [세월]을 마저 읽는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를 집대성한 책' 같다. 다만 나의 빈약한 배경지식이 이 어마어마한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해 답답할 뿐이다. 개인사가 시대의 역사와 나란히 그러나 시대의 중요 사건이 개인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이 책의 뉘앙스가 좋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뉘앙스는 그런 뉘앙스만은 아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지 않는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듣기 싫게 하지 않는, 아니 듣고 싶게 만드는 능력은 어떻게 생길 수 있나요?


[세월]을 읽고 나면 몇 자나 쓸지 모르겠지만 리뷰를 쓰고 이 자리를 떠서 '북큐레이션'을 배우러 갈 예정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닌 책을 놓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배우러 간다. 새로운 경험이다. 서모임을 하는 것조차도 처음엔 새로운 도전이었다. 책은 오롯이 혼자만 읽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꾼 경험이다. 이젠 협업을 배우려는데 내 안에서 작은 거부감이 인다. 그나마 책에 관한 일이기에 버티고 있다. 오늘까지 마치면 절반의 과정이 끝난다.


집에 오면 작은 아이에게 영어책, 그림책을 몇 권씩 읽어주고 큰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이번 주 논술학원 책인 [수레바퀴 아래서]의 2장을 읽도록 안내해야 한다. 그렇게 책으로 시작한 하루를 책으로 마무리 하는 시간, 잠자리엔 은유 작가의 [올드걸의 시집]을 읽으리라. 이 책도 정말이지 초반부터 나를 사로잡는다. 그녀가 읽기로 결심했다던 [울프일기]를 당장 읽고 싶어 참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은유 작가는 내가 정말 닮고 싶은 작가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단단하고 따듯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의 밑천은 생각도 하지 않고 닮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시작부터 '그림책 낭독 모임'이 있는 날이니까. 책이 일상입니다. 그게 사랑이라면, 내 삶은 사랑으로 잘 채워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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