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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Sep 23. 2022

[배움일기]초등 교과서도 어렵습니다.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 

  모두가 아다시피 초등교사는 전과목을 다 가르친다. 어떤 해에는 영어나 과학, 체육 등을 전담 교사가 맡아서 수업을 해 주지만 매해 전담 교과가 달라질 수 있기에 일이 년 하고 그만 둘 거라면 모를까 모든 교과를 다 가르치게 된다. 대학을 다닐 때 수업에 집중을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기에 배운 내용이 거의 기억에 없지만 때때로 귀에 쏙 박히는 말들이 있다. 가령,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와 같은. 정말 뼛속까지 박히는 말이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교육할 수 있을까? 어쩌면 4년 내내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던 건 그 말 때문인지도 몰랐다.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


  이 말은 내가 교직에 있는 내내도 염두에 두고 있는 말이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남에게 가르친다는 말인가? 주로 고학년을 맡은 내게 주어진 교과서들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아마 4학년 아이가 "엄마 이거 모르겠어. 알려줘!"라는 요청을 할 때 당황스러움을 느껴본 엄마라면 내 말을 공감할 것이다. 그래도 매년 초등학교 공부를 하는 사람인지라 보통 사람들보다는 능숙하겠지만 해마다 바뀌는 학년 교과서의 내용이 모두 쉬운 것은 아니다. 미리 문제를 풀어보고 교과서를 읽어보기만 해도 충분한 내용은 반갑다. 이건 수업을 어떻게 할지 기획만 잘 하면 되는 문제니까. 그 기획자요 연출자요 연기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은 제법 흥미롭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전달 이전에 내게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들이 문제였다. 내겐 주로 과학 교과가 그랬다. 학창 시절에서 과학 수업에서 기억이 나는 것은 생물 선생님과 물리 선생님이 잘 생기셨다는 것 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과포자가 바로 내가 아니던가! 그나마 아들이 자라면서 과학 분야에 관심이 높아져 천문학 부분을 같이 공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5학년 과학부터는 따로 공부가 필요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얇은 과학도서들이 두꺼운 과학책보다 더 어려운 것은 두께에 치중한 나머지 주요한 내용만 실려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과학책은 두꺼운 책이 더 쉽다. 그러니 얇디 얇고 글자도 몇 자 없는 과학교과서를 스스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휘력의 문제로 인해 사회 교과서와 과학 교과서를 아이들이 어려워는 것도 용어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얇은 책에 많은 내용을 넣다보니 문장에 경제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쉬워지는 건 다행스럽다. 처음 6학년을 할 때는 '점대칭의 위치에 있는 도형'까지 가르쳤어야 하는데 지금은 '점대칭도형'까지만 배우고 플레밍의 법칙도 과학 교과서에서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여전히 너무 배울 게 많다. 어른도 힘든데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다행히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가르치는 일보다는 배우는 일에 훨씬 더 적합한 사람이다. 밤새워 레포트를 써내고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은 정말 짜릿하다. 그러기에 초등교과서에서 어려움이 발견되면 정말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때쯤이면 그 단원이 끝나고 새로운 배울 거리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작년에 6학년 과학을 가르칠 때 전기 단원은 앞서 말한 것처럼 내용이 쉬워져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공부하다 보니 너무 재밌어서 아이들에게 더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해진 차시가 있어 2단원 천문학으로 빨리 넘어가야해서 포기하고 천문학을 다시 공부했다. 역시 천문학은 이것저것 재밌는 요소가 많아서 한 차시 할 분량을 두 차시씩 하다보니 또 진도가 늦어졌다. 도대체 교과서는 누가 이렇게 만드는 거지? 흥미가 생길만 하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니 흐름이 뚝 끊긴다. 물론 교과서의 내용만 전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흥미를 빨리 다른 곳으로 넘기는 것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1학기에 지구와 달을 배우고 2학기에 계절의 변화를 배우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머리에 랜턴 하나 달고 태양이 되어 보고, 지구본 들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태양 주변을 돌리며 한 시간 내내 노는 것도 필요하고 스텔라리움 프로그램으로 밤하늘 별자리를 한 시간 내내 조작하는 일도 필요한데 진도에 급급하니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내가 학생이라면 억울할 것 같은데 아무도 억울한 표정을 짓지 않는 게 더 억울하다. 애들도 아는 거다. 초등학교에선 대충 겉만 핥으면 된다는 걸, 그런데 그게 정말 초등학생이 배우는 자세가 맞을까? 더더더 배우고 싶어해야 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선생이 혼자 신나서 지구본 들고 빙글빙글 돌면 자기들도 서로서로 지구본을 들겠다고 나서는 게 아이들이니 나의 이런 배움이 무의미하지 않다. 그래서 배우는 선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교수학습방법이 된다. '뭐가 재밌어서 저 선생님은 눈이 반짝이는가' 신기하게 보는 거다. 


  많이 쉬워지고 있지만 그래도 초등 교과서는 여전히 많이 어렵다. 내용이 너무 많다. 굳이 이렇게까지 배워야 하나 싶은 내용들도 많다. 과목도 많다. 애들이 불만이 많듯 나도 불만이 많다. 나도 같이 배우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푸념을 할 때 맞장구를 쳐주면 신이 나서 교과서 흉을 막 본다. 초등학교 교육의 가장 큰 목표는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구성 자체가 흥미를 잃게 만든다. 그 흥미를 어떻게든 잃지 않기 위해 같이 공부하는 거다. 공부하면서 솔직하게 말한다. "나도 이거 너무 어려워서 어제 이 책 저 책 보고 다큐멘터리도 봤어."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편안해 한다. 선생님도 어려운데 내가 어려운 건 당연한 거구나 싶은 모양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잘 모르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수사적 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나는 이 일에 자신이 없다. 나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고 싶지 가르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배우는 사람 곁에서 함께 배우는 사람 정도는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정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좀더 목적을 두고 책을 읽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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